28살에 결혼해 아무 생각 없이 지냈다. 가정을 꾸리기는 했지만,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매주 주일 미사는 참례했지만, 하느님과의 특별한 만남 없이 그냥 성당만 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보다 6개월 뒤에 결혼한 여동생이 아기를 먼저 낳았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아기를 조카로 만나고서는, 결혼 후 5년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던 나는 처음으로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음… 임신할 수 있는 때를 잘 맞춰서 성관계를 하면 수정란이 만들어지고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자라다가 아기가 태어나겠지? 조카같이 예쁜 아기가 짠~ 하고 태어나는 거야’라고 계산하고서는, 아주 교만하고 또 교만하게 정말 계획한대로 딱 맞춰서 임신을 하고는 기고만장하게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 다섯 달, 여섯 달 임산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나의 계획대로 모두 다, 다 잘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헉! 헉! 헉….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누구나 결혼하면 임신할 수 있고, 임신하면 누구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 아니었어? 왜? 왜? 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임신한 첫 아기를 뱃속에서 6개월 만에 이별을 하고서는 한동안 대인 기피증과 죄책감 그리고 찾을 수 없는 원인 찾기 등을 혼자서 반복하면서 너무 슬퍼하며 살았다. 게다가 나에게 온갖 사랑을 주시던 할머니마저 보름도 채 되지 않은 날에 하늘나라로 훌쩍 가버리셨다.
그 해, 그 시간들은 나에게 삶과 죽음, 생명과 하느님, 섭리에 대해 옴팡지고 처절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이 모든 것이, 그 어떤 것도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며,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감사임을 아주 섬세하고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과 내 주변 많은 분들이 내가 스스로 새 생명을 잉태하고 귀하게 키워갈 준비가 될 때까지 나를 조용히 기다려주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새롭게 임신을 했고, 입덧 하나에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진통과 산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때조차 감사함을 되뇌었다. 하느님께서는 돌 틈에서 소박하게 피어있는 들풀 하나의 생명에도 감격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기다리시고, 소중한 새 생명을 만나게 해 주셨던 것이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