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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김수환 추기경의 '영성'을 말한다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9-04-07 수정일 2009-04-07 발행일 2009-04-12 제 2643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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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환 신부는 김 추기경은 명동성당을, 한국 교회를 한국사회의 중심에 옮겨놓은 분이라고 강조한다.
김재순 수녀는 김수환 추기경이 삶의 전반을 통해 인간이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바를 온전히 드러냈다고 설명한다.
더욱 더 낮은 곳으로 향하고자 했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 그의 온 삶을 관통하는 영성(정신)은 무엇이며, 그 영성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떠한 모습으로 현현되었는가. 각계 전문가들의 증언과 분석은 대개 ‘사랑의 영성’으로 귀결됐다. ‘겸손의 영성’, ‘순교의 영성, ‘자유’와 ‘존중’의 영성 또한 그의 삶을 통해 드러난 모범으로 강조된다.

김추기경은 자신의 삶과 신앙을 온전히 바쳐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다양한 문제를 깊이 고뇌하고, 매순간 결단을 내려왔다. 이후 남겨진 김추기경의 흔적들에서 우리가 본받을 영성들을 길어올릴 수 있다.

김추기경이 우리에게 남긴 모습, 가장 큰 공로는 자신의 삶을 통해 다양한 영성을 ‘보편화’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삶의 처음부터 마지막에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

“자유·존엄성 모범 보이신 분”

◆ 오경환 신부(인천교구·은퇴)

“‘영성’이라는 것은 너무 막연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더욱 구체적인 표현을 쓰고 싶군요. ‘나도 자유로워야 하고, 너도 자유로워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와 존엄성을 부여해주셨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그러한 하느님을 잘 따른 모범입니다.”

오경환 신부(인천교구 은퇴)는 김추기경의 삶은 인간 본성 안에 내재된 자유와 존엄성을 찾아간 행보였다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는 1970년대 유신체제 등 국민을 억압하는 정권을 거치면서 기본 권리를 짓밟혔다. 잘 알려진 대로 김 추기경은 그 중심에서 또 그 전면에서 인간 존엄성 수호를 위해 나섰다. 인간을 돕는 가장 기본적인 행보였던 것이다.

오신부는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며 “실제 유신정권을 방관하거나 협력하는 성직자들도 있었다”며 “만약 서울대교구장이 김 추기경이 아니었거나 혹은 명동성당에 시위대가 들어오고 성직?수도자 등이 정의평화 운동에 동참하는 것을 막았다면 지금의 한국 교회도, 한국 사회도 다른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결국 역사 안에서 권력자들에 의해 희생되셨지요. 대사제와 원로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위험인물로 간주했습니다. 김 추기경님에게도 그 시절에 신앙인으로서 실천해야 할 행동은 어려운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추기경님은 항상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을 본받는 모습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이어간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김 추기경의 자기성찰은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말하는’ 행동으로 승화됐다.

특히 오신부는 김 추기경 행동의 근원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단언한다. 김추기경의 영성을 말하기 위해 오신부가 던진 화두이자 결론이었다.

“김 추기경님의 관심은 가톨릭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 교회가 감내해야 하는 불합리함과 손해에 용감하게 맞설 수 있었던 힘입니다.”

또한 오신부는 “김 추기경님은 독일 유학 중 가톨릭사회론을 통해 인간 존재와 존엄성에 대해 속속들이 깨우쳤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결과를 충분히 받아들여 암울한 시대의 성직자로서,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시대의 요청에 응답할’ 신학적인 준비도 갖췄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오신부는 “김 추기경님은 명동성당을, 한국 교회를, 한국사회의 중심에 옮겨놓은 분”이라고 강조한다.

명동성당은 모든 집들이 ‘납작할’ 때 홀로 ‘뾰족하게’ 솟아 있었고 게다가 외국인이 지은 이질적인 곳이었다. 교회도 한국 사회 중심에 서 있질 못했다. 하지만 김추기경은 한국 교회가 변두리에 밀려날 것이라는 예상을 뒤로 하고 교회를 사회 중심에 가져다 놓았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우리 사회에 전한 자유와 인간존엄성의 목소리는 역사서에 고스란히 기록될 것입니다. 그 역사는 국민 모두가 배우고, 한국 교회가 세상 속의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킬 것입니다.”

“보편적 사랑 몸소 실천”

◆ 김재순 수녀(성심수녀회 고문서 담당)

김재순 수녀도 김수환 추기경의 영성을 설명하면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나고 싶어 했을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요즘 사람들은 인기를 위해서 별별 짓을 다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추기경님은 그저 가만히 계셔도 ‘슈퍼스타’ 만큼 인기를 누리셨지요. 선종하신 이후에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대중의 마음은 마음대로 조장할 수도 없고, 억지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오래 지속되지 않지요.”

김수녀는 “김추기경님의 삶 전체를 이끌어왔고, 또 그 모습을 타인의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한 바탕은 ‘인간 존중’의 신념”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 사고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이 인간존중의 근본원칙을 세우게 한 것이지요. 김추기경님은 특히 가난한 이들이 존중받지 못할 때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해왔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믿고, 나도 그 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끊임없는 수행과 노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덧붙여 김수녀는 “김추기경님은 더욱 근본적인 ‘인간 대접’에 대해 고민한 분”이라고 전한다. 사랑 실천도 단순히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마음으로, 또 주어진 역할에 의해 행하게 되면 한결같지 못할 수 있으며, 사랑과 인간존중의 원칙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 안에서는 차이를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께서 시를 통해 김추기경님을 ‘만인의 연인’이라고 일컬은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인 듯합니다. 추기경님을 만난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추기경님과 가장 친하다는 생각을 하더군요. 그러한 느낌은 억지로 줄 수 없으며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묵상이 뒷받침될 때 나올 수 있는 결실입니다. 추기경님 앞에 서면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특히 김수녀는 김추기경 생전에 “우리는 하느님 앞에 승복하는 길밖에 없습니다”라고 한 말을 다시금 강조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인간이고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라는 겁니다. 그것을 바꿀 수는 없지요. 김추기경님께서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솔직하셨고, 항상 스스로를 죄인으로 고백하셨습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뜻보다 훨씬 부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다. 그 죄스러움을 인식함으로써 김추기경은 ‘하느님 앞에 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늘 고민해왔다. 나아가 김추기경은 평소 사람들의 칭송에 ‘내가 살아있을 때 칭찬을 다 받았으니, 하느님께 받을 것이 남아있을까?’하는 고백을 이어왔다.

“김추기경님은 늙어가는 모습도, 죽음에 다가가며 겪어야 하는 고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삶의 마지막 고통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그 모습 또한 ‘우리가 무엇을 겪어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지’ 깨닫도록 해줍니다. 김추기경님은 삶의 전반을 통해 인간이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바를 온전히 드러내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