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교단, 교황과 90분간 격의없는 대화…“하느님 백성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야”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0일 한국 주교단에게 기도로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 친밀함을 쌓고 동료 주교·사제와의 친교를 돈독히 하며 가장 소외된 이들 곁에서 살아가는 목자가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알현을 위해 교황청 사도궁을 찾은 한국 주교단과의 대화에서 교황은 “기도로써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가운데 주교들 사이의 다름을 인식하며 친교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주교들은 사제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대하고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백성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124위 시복식에서 만난 한국 신자들의 열렬한 환대와 충실한 신심,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의 만남 등 10년 전 방한 당시를 회고하며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얼어붙은 남북 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밝힌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의 한국이었지만 두 개로 나뉘어 있는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상처가 남는 큰 고통”이라며 이 상황이 빨리 나아질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한국교회가 젊은이들을 위한 사목에 특별히 관심을 두라는 주문도 했다. 교황은 “활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눈에) 때로는 소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젊은이들의 사명이기도 함을 인식하고 대화를 통해 기꺼이 동반해야 한다”며 “젊은이들에게 신뢰를 주고 그들이 먼저 물을 수 있는 개방된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어나가자”고 당부했다.
한국교회 각 교구에 시노달리타스 정신이 자리잡는데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는 한국 주교단의 이야기에 교황은 “시노달리타스는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아니기에 시노드 정신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주교와 수도회 장상들의 능력은 시노달리타스 정신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함께 일하며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데 있다”며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를 읽고 또 읽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교 시절 만난 한국공동체와 수도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미소로서 선교하던 한국의 수도자들을 기억한다”며 ‘미소가 최고의 선교’라고 했다.
한국 주교단의 교황 알현은 예상보다 훨씬 긴 90분에 걸쳐 진행됐다. 교황의 연설이나 한국 주교단 대표의 발표 등 형식적인 절차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주교들은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주교들을 대하는 교황님과 함께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주교단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당시 기록 사진 중 60여점을 골라서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세 소주제로 엮은 화보집을 교황에게 선물했다.
한국 주교단, 알현 앞서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사도 베드로 묘소에서 미사 봉헌
사도좌 정기방문 기간 교황청 국무원과 각 부서 차례로 방문…보편교회와 지역교회 활동 공유
교황 알현에 앞서 이날 오전 7시 한국 주교단은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사도 베드로 묘소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베드로 묘소를 참배했다. 9월 19일에는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로마 거주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후 바오로 사도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9월 16일 사도좌 정기방문 일정을 시작한 한국 주교단은 19일까지 나흘간 교황청 국무원과 11개 부서를 방문했다. 한국 주교단은 부서 방문에서 복음 선포와 교회 가르침의 수호, 사제 양성과 수도 성소,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남북 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활동을 공유하며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함께 고민했다.
한국 주교단은 9월 22일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 내 로마한인본당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주례 미사를 끝으로 7일간의 사도좌 정기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