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시복시성 검찰관 박동균 신부

입력일 2009-05-20 수정일 2009-05-20 발행일 2009-05-24 제 2649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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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영성에 대한 지침 필요”
한국 교회 뿌리 찾는 일 스스로 준비하는데 의의
머리·몸으로 실천했던 순교신앙 되살려야 할 때
박동균 신부
“우리들 의식 속에 124위 시복시성 대상자들은 이미 성인이었죠. 정약종, 강완숙 모두 순교영성으로 이름나신 분들 아닙니까. 그런 분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이제야 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복시성 검찰관 박동균 신부(서울 반포4동본당 주임)는 한국 교회가 1984년 있었던 103위 시성의 열기를 제대로 이어오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한국 교회에 103위 성인이 있다는 것에 대한 자만에 그치지 않았는가’하는 자조다.

하지만 5월 20일, 여러 노력 끝에 ‘증거자 최양업 신부와 124위’ 시복시성을 위한 자료가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됐고, 성인을 위한 기다림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는 이번 시복시성운동에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염원하며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고 찾아간다는 의미와 ▲한국 교회 스스로 처음 시복시성을 위한 준비와 절차를 밟아간다는 점이다.

“이번 시복시성운동은 한국 교회의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우리 스스로 순교조상들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과제를 안을 수 있게 된 것이죠. 병인박해 이후 일제시대, 6·25에까지 이르는 순교자들을 찾아내는 것도 교회의 몫입니다.”

그는 신자들이 ‘순교영성’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좀 더 구체화된 순교영성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일이 없는 현대사회에서도 지켜나갈 수 있는 순교영성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103위 시성 25주년의 열기를 지속적인 시복시성운동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처럼 천주교가 들어오며 극심한 문화 충돌을 겪은 나라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 신앙선조들은 엄격했어요. 목숨을 내놓을 만큼 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재’도 확실히 지켰지요. 아주 철저하게 신앙윤리를 지켜나갔던 거예요.”

그는 선조들이 지켰던 그 생활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지켜나갈 수 있는 ‘순교영성’이라고 했다. 우리도 세속화, 현대화 등과 타협하지 않고 신앙선조들의 삶을 비춰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 선조들은 처음 신앙을 ‘학문’으로 받아들였지만 결코 머리로 끝내지 않았어요. 103위 시성 당시만 해도 많은 가정이 아침, 저녁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초기 순교자들이 머리와 몸으로 실천했던 신앙을 다시 되살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