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64) 어느 소박한 신부님의 꿈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12-09 수정일 2014-12-09 발행일 2014-12-14 제 2923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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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결혼식
며칠 전에 모 교구 후배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랑 비슷하게 나이를 먹었는데, 그 신부는 맑은 표정을 가진 청년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부를 보면서 속으로 ‘나만 왜 이리 늙어가나!’ 그래서 나는 질투 섞인 표정을 지으며 후배 신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세월이 흘러도 하나 변한 것이 없네. 비결이 뭐니?”

그러자 그 신부는

“에이, 형! 암튼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요. 딱히 비결은 없어요! 그냥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며 살고 싶은 마음뿐 이예요.”

“이그, 잘났다! 그래, 본당 생활은 바빠?”

“늘 평범해요. 아차, 지난달 사목위원들과 회의를 통해 결정한 일이 하나 있어요!”

“무슨 일인데?”

“제가 있는 지역의 가난하고 어려운 분들, 그리고 경제적인 부담으로 단지 혼인신고만 하고 사는 분들을 위해서 무료로 도와드리기로 했어요.”

“무료라고, 정말? 본당에서 결혼식은 본당 재정에 도움을 주는 하나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무료로?”

“네, 무료로. 그리고 결혼식 사진을 찍을 비용이 없는 분들은 우리가 사진도 찍어 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하객들을 위해서 조촐하게 피로연을 원하면 우리 성당 근처의 설렁탕집에서 싸고, 맛있게 식사를 드실 수 있도록 했고요. 그런데 피로연을 할 형편도 안 되면, 본당에서 국수를 삶아서 대접해 드릴 거예요. 성전 사용료, 꽃꽂이 등등, 그런 비용 일체 받지 않고, 그저 조촐하지만 따스한 결혼식이 될 수 있도록 나와 우리 본당 신자들이 합심해서 진행하기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재능 기부자들도 생기고. 얼마 전에는 미용실을 크게 하시는 부부가 신부 화장 봉사를 해 주기로 했고! 그런 일 하나, 하나가 모여서 삶과 마음을 나누다 보면 그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본당 공동체가 아닐까 싶어요.”

신부 화장이라는 말에 웃으며 나는,

“신부 화장! 나도 신부인데, 어찌 안 되겠니?”

나의 농담에 후배 신부는

“형, 우리 삶이 아무리 가난하고, 또 가난하다 하더라도 결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 앞에서는 너무나도 풍족한 삶을 살잖아요. 과연 우리가 이다음에 하느님 앞에 섰을 때, 모든 걸 버리고 주님만을 따랐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부터도 아직 멀었어요!”

괜히 신부 화장하겠다는 농담 한 마디에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후배 신부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전에 어느 신혼부부가 나에게 들려준 말이 생각났습니다.

‘신부님, 성전이 좀 멋있고, 주차장이 있는 성당에서 결혼을 하려고 했더니, 그 성당에서는 결혼하는 부부가 무슨 봉이라 생각하는지 평생 한 번 하는 결혼식을 성당에서 하려다 성당 사람들에게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아세요! 그래서 알았어요, 가난한 사람은 결코 성당에서 결혼 못 한다는 사실을!’

헤어지면서, 후배 신부에게 ‘나도 주례 봉사를 돕겠다’ 했더니, 후배 신부는 그냥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자기 본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는 후배의 뒷모습에서 우직하고, 큰 걸음걸음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후배였지만, 그저 너무나 고마운 큰 신부였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