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전하고 싶은 스케치북 없는 화가
심 화백은 스케치북이 없단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빈 캔버스에 곧바로 물감을 올린다. 그리려는 대상을 떠올리며 계속 묵상하고 상상할 뿐이다.
“스케치를 하며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하는 건 제 의지가 반영되는 거잖아요. 하느님의 뜻대로 그리고 싶어요. 하느님이 주시는 영감, 그 떠오름을 그림 속에 집어넣다보면 그림에 대한 확신이 생기거든요.”
심 화백에게 그림은 곧 신앙이고 기도다. 그림을 내면에서 꺼내는 만큼 끝없이 하느님과 대화하기 때문. 그는 “제 안에 있는 것을 바라보려면 기도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을 갖지 않으려 작품 활동 중에는 세상과 단절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둠을 경계해서인지 그는 그림 대부분에 노란 배경을 사용한다. 빛과 희망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노란 빛 주위에 어두운 색도 함께 칠한다.
“그림은 곧 인생 같아요. 인생에는 꽃길만 있지 않고 가시밭길과 돌길도 있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어둠을 몰아낼 빛을 우리에게 주시죠. 그 희망의 빛을 저는 성모님의 삶을 통해서도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그는 ‘평화의 성모님’을 자주 그린다. 혼란한 우리 세상에 성모님의 전구로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하는 뜻이다.
심 화백은 “성모님은 유독 많이 그려서 몇 점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그중에서도 그는 프랑스 루르드성지에 걸린 작품을 특별하게 여겼다. 사연이 깊었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2002년, 루르드성지에서 심 화백에게 ‘한국의 성모님’ 작업을 부탁해 왔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알고…?’ 심 화백의 성모님 그림이 실린 서울주보를 루르드로 가져간 신부와 수녀를 통해 심 화백이 그림 요청을 받았던 것이었다. “마치 천사가 제 그림을 옮겨간 느낌이었어요. 참 신비스러운 일이죠.”
이를 계기로 심 화백은 더 넓고 큰 캔버스를 마주했다. 많은 성당과 수도원에 그의 그림이 걸렸고, 개인전도 수없이 개최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그림을 봉정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제 그림이 의미 있게 쓰이고, 누군가 제 그림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는 말을 들으면 보람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