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계의 두 거두 프로이트와 융은 종교와 종교심을 보는 관점에서 크게 갈린다. 프로이트는 일종의 ‘병적 증상’으로 종교와 종교심을 치부했지만, 융은 ‘인간의 원형적 특징이자 매우 중요한 본능’으로, 또 ‘삶 저 너머에 있는 죽음을 인식하고 자신의 한계를 의식하는 종교심이야말로 인간과 타 생명체를 구별하는 인간 존재의 의식적 중심’으로 여겼다. 그런 면에서 융에게 종교심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갖고 태어나는 심리적 행동 유형인 원형(archetype)을 파악하는 데 있어 중요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융 분석 전문가인 이나미(리드비나) 박사는 ‘심리학자 이나미가 만난 교회의 별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통해 교회사에 등장하는 성인들 이야기를 융의 큰 그림과는 조금 다르게 분석 심리학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근현대 시대, 고대와 중세 시대 등으로 시기를 나눠서 성인과 순교자 등 30여 명의 삶을 따라 그들의 사상 및 종교적 태도를 심리적 측면에서 꼼꼼히 보고 재해석하며 종교적 심성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완성하는지, 또 그런 체험이 공동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폈다.
등장인물들은 소화 데레사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를 비롯해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대교황 등으로, 고대와 중세 시대에서부터 근현대 시대를 아우르며 ‘사랑과 헌신의 삶’ ‘지성과 영성의 삶’으로 나눠 소개한다. 19세기 이후 인물이 전체의 40%가량이고 여성 비중도 40% 정도다.
저자는 ‘지금 여기’라는 현재 자리에서 출발해 성현들 이야기를 소개한 다음, 그 안에서 우리 삶의 현실에 대해 심리학적 관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이슈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다양한 성찰 거리를 밝히면서 심리학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선으로 악을 이긴 아우슈비츠의 성자’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의 경우, 유다인도 아니었고 독일인 아버지를 둔 폴란드인으로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유다인의 탈출을 돕고 라디오 방송으로 정보를 전달하며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 바른 목소리를 냈다. 수용소에서의 죽음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예수님 죽음을 닮는 이마고 데이(lmago Dei)의 선택이었다. 마침내 하느님과 일체가 되려는 큰 자기를 지향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실현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다.
저자 자신도 “여러 인물에 대한 자료와 정보가 세속적 의미의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면의 성장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우리와는 참 많이 달랐던 고결한 이들이 걸었던 삶의 궤적과 사상의 형성 과정을 찾아 감히 흉내라도 내보려 한다면, 그저 막역해 보였던 ‘참자기 찾기’라는 고귀하면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여정의 시작이 가능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내용을 감수한 예수회 심백섭(유스티노) 신부는 “렉시오 디비나, 이냐시오 묵상 방법과도 구성 방식이 상통해서 그 묵상을 예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며 “성인전 같은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좋은 예시”라고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