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서로의 첫인상은 ‘동네 바보 누나’ 와 ‘한량’이었다. 이제 막 생긴 청년회 친목을 위해 간 MT에서 아내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여기저기 참견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 나서서 챙겨주기도 했다.
나는 혼자 옥상에 올라가 맥주를 마셨는데,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당시에 나는 미사 참례 외 본당 활동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MT도 반강제로 참여해서 딱히 즐겁거나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아내가 싫지 않았다.
아내는 청년 가운데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다행히 동갑내기 친구들이 있어서 그들끼리 자주 모임을 했다. 나도 우연히 그 모임에 불려서 같이 어울린 적이 있었는데 이후 가끔 동네에서 맥주 한 잔 하는 사이가 됐다. 나는 공대생이기 때문에 현대미술 작가인 아내와 얘기하는 게 매우 신선하고 재밌었다.
아내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에서 미술 관련 책들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와 나는 단둘이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눈 오는 데 히레사케 한 잔?” 아내는 술은 약하지만 구색 갖추기를 좋아했고, 같은 동네라서 약속 없이 갑자기 만나기도 했다. 연락받고 나와 눈이 쌓인 길을 걷는데 멀리 아내가 보였다.
마치 ‘안나 카레리나’에서 안나가 쓰고 나온 듯한 러시아풍 털모자를 쓰고 나왔는데, 눈 오는 날과 잘 어울렸지만, 그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크게 웃었다. 티격태격 놀리며 술집을 가던 그날부터 아내의 얼굴이 다르게 보였던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도 사실 내가 신경 쓰였다고 한다. 다만, 이성적인 관심이 아니라 애정이 필요한 삐딱한 청년으로…. 나는 모태신앙이지만 마음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청년회 안에서도 모난 돌처럼 보였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내가 곁에서 함께 있어 주었기 때문에 본당 공동체에서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자연스레 마음을 열면서 우리 관계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몇 년의 연애 중 나는 돌연 ‘나만이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혼을 결심했다. 명백히 잘못된 판단이었지만, 동시에 성가정을 이루겠다는 결심도 함께했으니, ‘주님의 부르심이었겠거니’ 한다.
아기는 부부의 축복이자 하느님 선물이지만, 동시에 신혼생활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원히 달콤할 것 같던 신혼의 사랑은 인내와 헌신하는, 이른바 서로 내어주는 사랑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이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고, 집안일 같은 사소한 일로 무던히도 싸웠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사랑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닫혀있던 마음이 아내를 만나며 부드러워지고, 주님 안에서 둘만으로도 행복한데 비오를 만나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사랑이 아닐까.
우리는 영원히 서로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연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