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 55,10-11 / 제2독서 로마 8,18-23 / 복음 마태 13,1-23 또는 13,1-9 온갖 고통과 역경 다가온다 해도 영적 노력으로 복음의 씨 뿌리며 은총의 열매 풍성히 맺는 삶 살길
풍성한 열매 맺는 사람들
참 특별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뒤로는 잔잔한 갈릴래아 호수가 펼쳐져 있습니다. 호숫가로는 예수님의 달콤하고도 명쾌한 말씀에 매료된 사람들이 앞다퉈 몰려와 예수님 곁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 마침 호수에서 육지로 미풍이 불어왔습니다. 호숫가에는 자그마한 고깃배 한 척이 묶여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연사가 무대 위로 올라가듯이 배 위로 올라가 서십니다. 예수님께서 배 위로 오르시니, 군중은 예수님의 얼굴을 한결 잘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호숫가에 삥 둘러앉았습니다, 참으로 정겹고도 평온한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시자 바람에 실린 예수님의 음성은 아주 가까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백성들의 귓전을 울렸습니다. 꿀보다도 더 단 예수님 생명과 구원의 말씀이 백성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줬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 그 행복했던 광경을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향해 던지시는 말씀은 또 어떻습니까?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의 설교처럼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애써 미사여구를 늘어놓거나 장황하지도 않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잘 알아듣도록 평범한 일상의 용어들,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마태 13,23) ‘어덜트 차일드’(Adult child)란 말이 있습니다. 몸은 어른입니다. 나이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그러나 사고방식이나 행동하는 것이 유치원생이 따로 없습니다. 외모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입만 열기 시작하면 그의 미성숙이 온 천하에 다 드러납니다. 틈만 나면 떼쓰고 고집부립니다. 예의도 인내심도 없습니다. 말도 함부로 해서 수시로 주변 사람들 상처를 주며 이 사람 저 사람 힘들게 만듭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인간적 성숙, 영적 성숙, 지적 성숙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비자 때, 그리고 초보 신앙인일 때의 조금은 단순하고 순수하며,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이고, 약간의 기복적인 신앙을 지니는 것 너무나 당연합니다. 초보이기 때문에 용서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접어든 지 30년, 4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조금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참으로 진지하게 반성해볼 일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깊어감에 따라 그에 맞는 성숙한 신앙생활이 요구됩니다. 다양한 영적 노력의 결과 하느님을 좀 더 잘 알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깊어가고, 그 사랑을 이웃들에게도 나눠주는 그런 성숙한 신앙인, 하느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난데없이 다가온 이해하지 못할 고통 앞에서도 이를 담담히 수용하고, 삶이 내게 호의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큰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그런 신앙인이야말로 열매 맺는 신앙인입니다. 웬만한 십자가 앞에서는 꿈쩍도 않는 신앙인,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에 목숨 걸지 않는 신앙인, 아무리 높은 파도가 밀려와도 자기 중심에 하느님께서 굳건히 자리하시니 크게 연연하지 않는 신앙인이야말로 주님께서 흐뭇해하실 풍성한 열매 맺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은 세상 방방곡곡에 뿌려지는데 때로 안타까운 분들을 만납니다. 얼마나 인품이 훌륭한지, 얼마나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지, 정말이지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인데…. 그러나 단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영원히 살고 죽는 문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메시지가 자신의 인생 주변에 시시각각으로 뿌려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붙잡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특별하게도 하느님 은총의 메시지는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절대로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억지로 손에 욱여넣지 않습니다. 철저하게도 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닫힌 인간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자유로운 동의를 구할 뿐입니다. 오늘도 생명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말씀의 씨앗이 세상 방방곡곡에 뿌려지는데,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여러 유형을 보입니다. 길에 뿌려진 씨, 그들은 말씀을 듣지만, 그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돼지 발에 진주 격입니다. 그들은 말씀의 가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기에 아무리 소중한 생명의 씨앗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 그들은 마음이 돌처럼 단단히 굳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나 복음 말씀이 좋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이 너무나 완고하다 보니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생명의 씨앗을 적극적으로 가슴에 안고자 하는 수용성, 감성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피상적이어서 하느님께서 계속해서 그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지만 조금도 열 기색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 귀로 듣지만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에 몸과 마음이 온전히 쏠려 있어 말씀이 파고들 틈이 없습니다. 육체가 영혼을 지배하고 있으며 지상의 것들이 천상의 것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절망으로 끝나고 맙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 그들은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씨앗을 자신 안에 소중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복음 안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깨달음을 이뤄낸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놀랄만한 선물 한 가지를 선사하시는데, 그 선물은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맛보는 것입니다. 영의 눈, 생명의 눈,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경이로움과 축복의 대상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꽃봉오리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다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런 생명의 이치를 한번 깨달은 사람의 삶은 점점 더 넉넉해지고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더욱 풍성하게 내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 열매 맺는 삶입니다.양승국 스테파노 신부,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