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 아래 구슬땀 흘리면서도 창조 질서 지켜내는 사도들
농약·비료 과하게 쓰지 말고
더 얻으려는 욕심 버려야
성경 말씀 깊이 되새긴다면
농사에 대한 철학 배울 수 있어
무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시기다. 그러나 농민들은 대체로 여름에 더 바쁘다. 특히 한창 수확 철을 맞아 농민들은 비닐하우스에서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비닐하우스 실내 온도는 50℃에 육박한다.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느님 뜻에 따라 정직하게 농사를 짓고 있는 가톨릭신자 농민을 만나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들어봤다.
■ 농사는 준비가 더 중요
7월 8일 경북 성주군에서 만난 이재관(윤일 요한·60·대구대교구 성주 선남본당)·정재영(모니카·54)씨 부부는 숨 막히게 더운 비닐하우스 안에서 참외를 수확하고 있었다. 참외 수확은 쪼그려 앉아 열매를 한 알 한 알 따야 하는 다소 힘든 작업이다. 7월은 한 해 참외 농사 기간 중 마무리를 짓는 단계. 다음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부의 손길은 점점 빨라진다.
성주군은 전국 참외의 80%, 약 18만 톤(2022년 기준)을 생산하는 참외의 고장이다. 평균 당도 12브릭스(Brix) 이상의 달고 시원한 맛을 내는 참외는 한국인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과일이다. 성주 참외는 주로 2월부터 8월까지 출하되는데, 그중에서도 4~6월에 1년 치 물량의 70%가 유통된다.
“수확한다고 농사가 끝나지 않습니다. 곧바로 다음 농사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데, 사실 농사는 준비가 더 중요합니다.”
참외 농사는 대체로 11월경 시작된다. 육묘장에서 모종을 사거나 모종을 직접 길러 밭에 심는다. 3~4주 정도 지나면 꽃이 핀다. 자연 수정을 위해 농민들은 밭에 벌통을 둔다. 수정이 끝나면 암꽃 봉오리가 열매로 변하고, 약 40일 뒤면 수확할 정도로 열매가 자란다. 여름까지 수차례 이 과정을 반복하면 농사가 끝난다. 농민들은 곧이어 다음 농사를 위해 밭을 갈고 땅의 염분을 제거하는 등 토양 관리 작업을 한다.
“농사는 토양 관리가 중요합니다. 토양을 잘 관리해야 수확량도 늘어나고 병충해가 많이 생기지 않아요.”
■ 순리대로 지어야
올해로 40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이재관씨는 지난 한 해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꿀벌이 없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참외 농사에 꿀벌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꿀벌 부족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될 것입니다.”
한국양봉협회의 월동 봉군 소멸 피해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1만2795개 양봉 농가 중 82%인 1만546개 농가가 꿀벌이 사라져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꿀벌들이 사라진 이유로는 지난 겨울 고온 현상으로 인해 꿀벌들이 빨리 꿀 채집에 나섰다가 동사(凍死)했다는 추론이 유력하다. 참외 농사에서는 화분 매개에서 꿀벌이 차지하는 비율이 93.1%로, 한 해 6만4000여 봉군이 참외 생산에 사용된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땅을 훼손하지 않고 작물을 꾸준히 길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농사를 지으려 합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하늘이 주는 만큼만 받으려 해야 해요.”
■ 성경의 농사 철학 따라야
이재관·정재영씨 부부는 “결국 하느님 말씀대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며 특히 잠언과 지혜서 속 말씀을 깊이 되새긴다면 농사에 대한 철학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하느님 창조 질서에 따라 땅을 가꾸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수확물을 더 얻기 위해 농약이나 비료를 과하게 쓰는 욕심을 갖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 흙도 살리고 하느님 말씀대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씨도 “흙은 생명의 원천”이라며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말씀을 절대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부부는 신앙생활에도 열심이다. 꾸준히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본당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선남본당(주임 채창락 요셉 신부)에서 이씨는 사목회 총무, 정씨는 성가대 총무를 맡아 봉사하고 있다.
이씨도 본당 활동 초기에는 농사에만 매달리지 않고 본당 활동에 충실한 선배들을 보면서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봉헌한 몇 배로 하느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을 선배들 모범을 통해 목격하고, 자신 또한 체험했다고 한다. 이씨는 “농민이야말로 물질 만능에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 창조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사도직을 수행해야 하는 소명을 지닌다”고 말했다.
“요즘 농사짓는 청년들은 간간이 보이는데, 우리 본당을 비롯해 농촌본당에 젊은 신자들이 너무 없어 정말 안타깝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농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에 대를 잇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 많습니다. 함께 관심 갖고 기도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