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담은 이야기처럼, 임신에 대한 교만한 나의 태도에 개입하신 하느님을 통해 결국 나는 진통과 산통을 겪는 순간에도 감사를 외치다가 나의 딸과 만났다. 하얗고 예쁜 밤톨이(단단하게 크길 바랐던 딸의 태명)를 만나는 그 순간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였으며, 기쁨과 감사였다.
그렇게 해서 5년 만에 감사로 만난 아기, 이렇게 아기가 태어나면 이제부터는 기쁨과 행복만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어느 누구도 육아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태명과 달리 밤톨이는 너무나도 약했다.
12월에 태어난 아기는 아픈 곳이 너무 많아서, 나로 하여금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한 채 한 겨울을 울면서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병원을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다. 일주일도 안 되어 황달로 병원에 입원하고, 생후 50일도 안 되어 서혜부 탈장으로 전신마취 수술에, 사경(고개가 삐뚤어짐), 비닐로 기도 막힘(숨을 쉬지 못해 죽을 뻔함), 만 2살에 신종플루(콧물과 가래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보랏빛 얼굴), 게다가 그 시기에 소아 류마티즘(희귀성 난치병)까지…. 죽음이 항상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느낌으로 심장과 간을 졸이며 살았다.
소아 류마티즘은 추이를 잘 지켜봐야 알 수 있다는 말 한 마디에 아이가 매일 무얼 먹고 통증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일기를 쓰고,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채혈을 하고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줄을 서서 새벽 3시에 진료를 받곤 했다. 2시간 기다려 5분 보는 진료 시간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의사 선생님께 부끄럼도 없이 가슴에 안고 간 일기장을 들척이며 읽어대었으며, 다리를 아파하는 아이를 안고 울며 매일 좌절의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결단코 나의 삶에 아기는 이 첫 아이 하나만이어야 하고 내 삶은 이 아이와 함께, 이 아이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 하느님, 저는 더 이상 아기를 낳지도 않을 것이며, 이 아이만을 위한 삶을 살 것입니다”라는 단단한 결심과 함께 마음을 다지며, 이대로의 삶을 받아들일 각오를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신비한 일이 벌어졌다. 1년 6개월 동안 먹었던 약을 더 이상 안 먹어도 된다고, 소아 류마티즘으로 볼 수 없다는 판정을 받게 됐다.
나는 여전히 출산과 육아의 두려움이 가득한 상태에서도, 예전 하느님께 더 이상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한 경솔함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둘째 도토리를 만나는 또 다른 감사를 경험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