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니임~~!”
“쌔앰~~~”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말인가? 나를 부르는 그 예쁜 목소리에 나는 반응하고, 고개를 들어 나를 부르는 제자와 눈을 맞춘다.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신비이며 감사이며 소명이며 사랑이다.
그렇다. 나는 학교 교사이고, 우리 학교 학생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2000년에 교사가 되어 그렇게 신나게 살아오면서 나는 학생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내가 그토록 부족함이 많았어도 아이들은 나를 사랑하고 의지했다. 정말 깊이 감사할 일이다.
26살 나이에 천방지축 교사가 되어 어른 선생님들로부터 근심 어린 따뜻한 충고를 받기도 하고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워가면서 조금씩 교사스러워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8년을 살다가 12월에 아기를 낳고 3개월 출산 휴가 중, 2월 어느 날 하루에, 갑작스럽게 안법고로 발령이 났다.
아기는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학교를 새롭게 만나서 학교 행정을 학생들보다도 모르는 상태로 담임교사가 되어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기존 학교보다 2배 이상 먼 새로운 학교는 우리 집에서 35㎞ 이상 떨어진 곳이었으며, 매일 밤 모유 수유를 하면서 나는 졸음 운전으로 역주행을 하거나 고속도로에서 벽을 박을 뻔 하는 등 죽을 뻔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야만 했었다. ‘제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하느님께 울부짖듯 소리를 지르고 울면서 그 긴 길을 운전하며 다녔다.
결국 육아를 대신 맡아주던 나의 원가족(친정 어머니와 여동생)의 신체와 정신의 건강이 피폐해지는 일이 벌어졌으며, 급기야 나는 허리 통증으로 쓰러져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이 벌어졌다. 일주일 동안 병실에서 소변줄을 꽂은 채 꼼짝 못하고 천장만 바라봐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을 근사하게 해석할 만한 명쾌한 논리(?)가 필요했다. 그 어떠한 이성적인 설명으로도 내 삶에 들이닥친 이 모든 고통을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그냥 간절히 낫고 싶었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배우고, 나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고 싶었다. 그렇게 광야에서 울부짖으며 헤매다가 학교 안에서 작게 ‘성경 공부’를 시작하고,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의 영, ‘로고스’를 알게 되었다. 결국 10여년 만에 그 고통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