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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학교를 찾아서] (30)인천대건고등학교

박주헌 기자
입력일 2023-07-25 수정일 2023-07-25 발행일 2023-07-30 제 335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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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꿈 찾아 미래 대비하는 ‘주체적 인재’ 양성에 주력
자신의 진로에 맞게 강의 선택해
학점 관리하는 ‘교과교실제’ 운영
세계 시민으로서 자질 함양하는
종교학 수업도 인성 교육에 큰 몫

인공지능 관련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양심 바른 사람, 실력 있는 사람, 봉사하는 사람.’

인천 동춘동에 있는 인천대건고등학교(교장 김영재 그레고리오 신부, 이하 인천대건고) 인재상이다. 1945년 개신교계 영화중학교를 전신으로 1962년 인천교구 재단으로 이관, 이듬해 인천대건중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며 가톨릭학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조선교회 첫 사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처럼 인천대건고 학생들은 선진적 교육 위에 양심과 실력을 갖춘 인재로 자라난다. 진로·진학, 면학, 인성 계발 등 모든 측면에서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인천대건고의 면모를 살펴본다.

학생선택중심 교육, 헌신하는 교사

2018년 교육부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2019년 선진형(전면적) 교과교실제 운영 학교로 지정된 인천대건고는 학생들이 필요한 강의를 고르고 강의실을 옮겨다니며 학점을 스스로 관리한다. 대학생처럼 자기 진로에 맞춰,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는 교육을 중시해서다.

고교학점제와 선진형 교과교실제를 모두 실행한 것도 인천 사립 고교 중 최초다. 교육부에서 2025년 고교학점제를 전면 실시할 예정임을 고려하면 선도적 행보다. 교과교실제도 현재 대다수 학교는 절충형을 채택했으나 인천대건고는 일찍부터 전면 도입했다.

대학의 겉모양만 따라한 게 아니다. 내실에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폭넓게 보장돼 있다. 2023학년도 학년별 개설 과목은 국어, 수학, 영어 등 학년 공통 및 일반선택 과목 49개 외에 ‘응용 프로그래밍 개발’, ‘체육 전공 실기 기초’, ‘경제 수학’ 등 진로선택 과목 50개까지 총 99개 과목에 달한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 뜻을 둔 학생들을 위한 융합 로봇공학과 융합 컴퓨터공학 교육과정은 최고 인기 과목이다. 1학년 공학 일반 과정부터 대학에서나 배우는 C 프로그래밍, 정보과학 수업에 이르기까지 대학교에 필적하는 전문적 프로그램으로 학생이 진로를 깊이 있게 개발하도록 돕는다.

이 모든 것은 교사들의 열정 덕분이다. 학생 수업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교사들은 매년 똑같은 수업을 되풀이하기보다 새로운 강좌를 꾸준히 개발한다. 양질의 교육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자 교육부 지원 사업 공모에도 적극 참여한다.

교육과정운영부장 박노길(하상 바오로) 교사는 “이제 공부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라며 “교육과정 급변 시점에 입시도 중요하지만 학생이 스스로 꿈을 찾아 가꾸며 미래에 대비하도록 이끄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층마다 마련된 자율 학습 공간 홈베이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인천대건고등학교 제공

학교가 키워주는 자율성

최근 대학은 자율성이 입증된 인재를 원한다. 수상 기록보다 생활기록부 속 과목별 세부 특기사항에 자기 주도적 학습 내용이 적힐수록 입시에 유리하다. 그 흐름을 읽은 인천대건고는 자율성 함양에 주력해 면학 분위기를 조성했다. 학교 1층에 꾸며진 스터디카페, 층마다 있는 자율 학습 공간 홈베이스는 조용하고 쾌적해 스스로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 학생으로 붐빈다.

대건주말공동체도 면학에 도움이 된다. 학년별로 감독 교사 2명과 학생 20여 명이 토요일마다 학교에서 자율 학습을 하는 공동체로 수십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공동체 일원이었던 졸업생들이 방문해 대학생활 팁과 공부 방법을 알려주며 특별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학생회 송지후(2학년)군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시간 소모적인 강제 학습과 다르다”며 “열심히 하는 친구들 모습에 탄력받아,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저절로 분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교목실에서 학생들이 간식을 먹으며 친교를 나누고 있다.

인성을 사목하는 교목신부

교목실은 학업에 과열된 학생들 심성을 돌보는 쉼터다. 늘 열려 있으며 교목신부가 상주해 학생들을 간식으로 반기고 친구처럼, 아버지처럼 정서적 위안을 준다. 학생들이 담임교사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을 신부에게 털어놓는 건 사목자의 특수한 카리스마 때문이다.

교목 김도형(아우구스티노) 신부는 1학년 교양 과목으로 종교학 수업도 맡는다. 종교를 가르치기보다 자원순환, 사회 문제, 생명 존중 등 세계 시민으로서 자질을 함양한다. 철학 강좌처럼 진행하며 진로 고민 등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기에 인기가 높다.

종교학 수업으로 가꿔진 인성 속에 학업 동기가 얻어진다. 정주영(2학년) 학생회장은 “의미 없이 공부하던 중학교 시절과 달리 기후, 인권 등 교육을 통해 다면적으로 사고하게 돼 공부에 의미를 붙이며 노력하는 사람이 됐다”고 밝혔다.

김진야 등 유명 선수를 배출한 축구부도 종교학 수업에서 힘을 얻는다. 6월 태국에서 아시아축구연맹 U17(17세 이하) 아시안컵 준결승에 진출한 한국 U17 축구 대표팀 황지성(2학년) 선수도 종교학 수업을 저력의 비결로 꼽았다.

황군은 “인생에서 축구가 아닌 다른 면도 보여줘 생각도 풍요로워지고 미래의 공인으로서 전인격을 갖춰주는 점이 유익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지역 어르신과 일대일 결연을 맺고 휴대전화 사용법 알려드리기 봉사를 하고 있다. 인천대건고등학교 제공

기꺼이 나서는 봉사자들

자율을 배우는 인천대건고이기에 자율적 봉사도 두드러진다. 바쁜 학업에도 교내외 봉사를 펼치는 대건봉사단 학생들은 스스로 나눌 줄 아는 실천의 사도들이다. 봉사단은 화요일 점심시간 30~40분을 희생해 등굣길 근처에 널린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줍고 있다. 강제가 아닌 스스로 신청해 이뤄지는 활동이다. 1달 전 대건주말공동체도 협력해 소외 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밥차도 진행했다.

1학년 1학기부터 봉사에 참여한 강의성(2학년)군은 “나눔을 강조하시는 신부님과 선생님들께 감화를 받아 참여 중”이라며 “내 작은 도움으로 모두가 행복해질 때 개인적 행복 이상의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정진성(마르첼로) 교감은 “올바른 인성 교육의 마무리 단계인 고등학교 교육을 통해, 자율뿐 아니라 어떤 진로에서든 기본 소양인 봉사 정신과 배려를 배우길 바란다”고 전했다.

화요일 점심시간마다 자발적으로 지역 일대 쓰레기를 줍고 있는 학생들. 인천대건고등학교 제공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