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기 전에, 끝까지 피조물 터전 지키는 파수꾼 돼야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 최종 결정 과학적 안전성 둘러싼 찬반 대립 격화 과학의 시각 넘어 생명의 관점에서 신앙인들이 적극적인 목소리 내고 균형 잡힌 신중한 판단 절실한 시점
‘우리 공동의 바다를 위하여!’
요즘 길을 가다 보면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볼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사반대한다!”, “원전 오염수 불안감 조성, 우리 수산업 위협한다!” 현수막의 서로 다른 표현이 보여주듯이, 오염수 방출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제 방류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이러한 갈등 상황 앞에서 누가 묻더군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미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는 사안이고, 특정 정당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것처럼 비치고 싶지 않아서 말을 머뭇거리고 있으니, 다시 질문이 이어집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입니다. 핵 오염수 방류 찬반 논쟁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지 12년이 지났지만, 언제쯤 수습이 될지 가늠조차 안 되는 상황. 일본 정부는 사고 당시 녹아내린 핵연료를 냉각하기 위해 사용했던 오염수를 여과 처리해 방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30만 톤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오염수를 30~40년에 걸쳐 바다에 흘려보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2023년 7월 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한다는 내용의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정부는 이 발표 내용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제 오염수 방출이 8월 24일로 최종 결정됨에 따라 찬반 의견 대립은 더 심화하고 있습니다. 방류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보고서를 근거로 과학적으로 검증되었으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반대자들은 핵발전의 확대 진흥을 목표로 하는 국제원자력기구가 내놓은 보고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오염수 속 방사능 물질의 영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과학자는 다핵종제거설비(ALPS)가 인체에 해로운 방사능을 대부분 제거할 수 있고,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도 바닷물에 희석해서 배출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다른 과학자는 희석하더라도 방출 총량은 변하지 않으므로 삼중수소를 비롯한 기타 방사능 물질이 체내에 축적될 수 있다고 맞섭니다. 누구를 위한 바다인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지점에서 저는 새삼스레 바다에 묻고 싶습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실 오염수가 버려지는 곳은 바다인데, 우리는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다의 입장에서, 과학기술의 관점을 넘어 생명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봅시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가 인간에게 유해한가 안전한가를 논의하기 전에, 바다에 무언가를 투기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오염수 방출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지기 전에, 바다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과 바다가 품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가 받을 영향을 먼저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다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곳, 그분의 작품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국가의 소유물도 아니고, 모든 존재를 위한 ‘공유지’입니다. 푸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곳에는 경이로울 정도로 다양한 종이 살고 있습니다. 바다는 인간을 위한 자원 창고나 쓰레기통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위한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의 폭을 넓힐 때, 우리는 다시 한번 묻게 됩니다. 이곳에서 우리만이 중요한 존재인가? 바닷속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한 것일까? 이 공동의 바다에 사는 다른 피조물들의 권리는 무엇일까? 이 공유지에 한 나라가 마음대로 폐기물을 버려도 되는가? 생태적 신중함 우리 공동의 바다가 누구의 작품이며 얼마나 많은 존재가 함께 살고 있는지 생각하다 보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 문제를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다수결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특정 집단에 돌아가는 이익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도 ‘선’이 되는지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명에 관한 문제 앞에서는 복음의 빛에 비추어 언제나 신중한 길로 가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는 말씀은 오늘날 우리 공동의 바다를 위해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 확신도 경계해야 합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방사능 오염수의 장기 해양 방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과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불일치한다는 점은 그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사실, 지구 생태계에 관련된 과학은 100% 확실한 무언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전망을 몇 가지 시나리오 형식으로 제시할 뿐입니다. 또한 과학 역시 인간의 여러 이해관계와 결부될 수밖에 없기에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며 때로는 편파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찬미받으소서」 회칙에서 언급된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신중한 판단”(135항)은 오염수 방출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시작을 못 막았으면 중단을 목표로 2023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최악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고 또 막아내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에 밑줄을 그으며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 대한 우리 신앙인의 역할을 그려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버림의 문화’에 맞서는 바다의 파수꾼처럼 계속해서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끝까지 목소리를 내는 모습입니다.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믿으며 우리 공동의 바다를 위한 이야기를 계속 나눌 때, 그 이야기의 힘이 바로 ‘돌봄의 문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염수 방류 시작을 막지 못했다면, 다음은 방류 중단이 목표가 될 수 있겠지요. 네, 많이 늦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습니다.”(「찬미받으소서」, 205항)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3.5%의 법칙’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에리카 체노웨스(Erica Chenoweth) 교수가 2013년에 발표한 이 법칙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3.5%가 지속해서 비폭력 시위를 벌였을 때 실패한 사례는 없었다고 합니다. 즉 3.5%의 사람이 새로운 변화를 외치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3.5%는 바닷물에 있는 염분의 양이기도 합니다. 육지로부터 온갖 오물이 흘러 들어오는데도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3.5%의 염분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3.5%의 사람이 함께 외치는 소리가 변화를 끌어내듯이, 3.5%의 염분이 바다의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 원천이듯이, 3.5%의 지금 여기 우리가 공동의 바다를 위해서 파수꾼의 역할을 다한다면, 아이들에게 좀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송영민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