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는 한국천주교 최초의 평신도 지도자였던 이벽(요한 세례자·1754~1785)이 태어나고 순교한 곳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이 평신도 스스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천주교 초창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이벽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 수는 없을 것이다.
춘천교구는 지난 5월 20일 이벽의 생가터와 진묘터가 있는 화현리에 ‘화현 이벽 성지’를 선포했다. 기자가 지난 9월 7일 ‘화현 이벽 성지’를 찾았을 때, 이벽이 신앙을 실천하고 순교했던 생가터와 진묘터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것을 봤다. 이벽의 생애는 자주 들었지만 그가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실천했던 장소를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는 뚜렷한 감명이 있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으로 부족함 없이 살던 이벽은 왜 가장 앞장서 천주교를 믿고 박해를 당하고 결국 순교까지 했을까 질문을 던지게 됐다. 분명한 답은 그가 신분제를 깨뜨리고 중인과 평민, 여성까지 차별 없이 한 형제자매로 포용해야 한다는 천주교 신앙에 확신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신분제가 없어진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어떤가? 최근 들어 한국사회에는 ‘자유민주주의’를 ‘공산전체주의’와 극과 극인 양 대비시키면서 나와 다른 가치관이나 사고를 가진 사람을 배척하거나 공존해서는 안 될 대상으로 단정하는 풍조가 팽배해지고 있다. 나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를 지우려는 모습도 횡행한다. 이벽이 살던 시대보다 오히려 더 완고한 신분제 사회일지도 모른다.
이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의 한국사회에 더욱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