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36) 엄마의 눈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입력일 2023-09-12 수정일 2023-09-12 발행일 2023-09-17 제 336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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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절한 도움이 사람을 살립니다
J는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자살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딸의 출현에 당황한 엄마는 흉기로 J를 위협하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엄마 좀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고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엄마의 삶을 알기에 마음 한편에서는 차라리 엄마가 그렇게 생을 끝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안방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엄마의 죽음 이후 J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빠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너무 컸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빠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망가지는 것만이 아빠에게 복수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계속 안 좋은 방향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냥 모든 게 무의미했고,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았습니다. 학창 시절은 한마디로 방황과 일탈의 연속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됐지만 J는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 들어가도 적응하기가 어려워 계속 이직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소개로 남자를 만나 함께 살면서 아이도 가졌지만, 동거 전부터 질병을 앓고 있었던 남자는 아이가 태어날 때쯤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지만 혼자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꾸려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채팅앱을 통해 남자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자기 욕구 채우기에만 급급했고 오히려 J가 가진 돈을 빼앗아 가거나 J와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기 일쑤였습니다. 거기다 직장마저 쫓겨나게 되면서 J는 삶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어린 시절 자신을 위협하던 엄마의 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응시하던 엄마의 그 이글거리는 눈빛이 이제는 자신의 눈빛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J는 아이를 살해하고 자신도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J를 처음 만났을 때, J는 이미 삶을 체념하고 있었고 자신을 추스를 힘도 없었기에 아이까지 감당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J를 설득해 우선 주중에는 기관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만 아이를 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J의 적성에 맞는 기술을 찾고 배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기에 경제활동에만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J는 홀로 많은 문제를 감당하려다 보니, 눈덩이처럼 불어난 문제 자체에 압도되어 현실적인 대처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해결 가능한 수준으로 나누어 한 가지씩 대처할 수 있게 하니까 J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상담 종결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J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생기가 넘치고 삶에 대한 확신이 보였습니다. 아이도 다시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행여나 노파심에서 물어봤습니다. 엄마의 눈빛이 아직도 J를 무섭게 쳐다보고 있는지. J는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제 마음이 편해지니까 엄마의 눈빛도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아요. 엄마의 눈에서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어요. 그래도 엄마는 엄마인가 봐요.”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