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아흔 살 노사제의 열정, 시골 바닷가 공소에 희망의 돛 펼치다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23-09-19 수정일 2023-09-19 발행일 2023-09-24 제 3361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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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경주 감포공소
신자 수 급감해 발길 끊긴 곳
허연구 신부 등 노력으로 부활

9월 17일 감포공소 세례식 후 허연구 신부(가운데)와 영세자 이창환(허 신부 왼쪽)·박란경(허 신부 오른쪽)씨, 이종은 공소회장(왼쪽에서 세 번째) 등 공소 신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주일미사 참례자 수가 10명 남짓한 대구대교구 경주 감포공소(양남본당 관할)에 9월 17일 새 신자 2명이 탄생했다. 교구 원로사목자 허연구(모세) 신부 주례로 거행된 이날 세례식에서 이창환(바오로)씨와 박란경(막달레나)씨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창환씨의 대부를 선 이종은(에데시오) 공소회장은 “허연구 신부님이 우리 공소에 오시고 처음 맞이하는 세례식”이라며 “이분들이 감포공소 활성화의 씨앗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감포공소의 경사 소식에 경주뿐 아니라 대구와 포항, 울산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왔다. 대부분 허 신부와 오랜 인연을 맺었던 신자들이다. 한 신자 부부는 감포공소에 여성 새 신자가 탄생할 때마다 한복을 지어 선물할 것을 약속했다. 이종은 회장은 “아무도 오지 않던 공소가 허 신부님 덕분에 활기찬 공동체가 됐다”고 기뻐했다. 허 신부와 감포공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북 경주시 감포읍 지역은 바닷가 앞이라 예로부터 무속신앙이 강하다. 1980년 즈음 이곳에 이주한 적은 수의 신자들은 천주교에 냉랭한 지역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가정공소를 시작하며 신앙의 뿌리를 내렸다. 점차 신자 수가 늘어나자 공소 건립이 추진됐지만, 주민들 반대에 부딪혀 2005년에서야 경주시 감포읍 감포로12길 19-8 현 위치에 230여m² 규모 단층 조립식 공소 건물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등 여러 가지 위기가 한꺼번에 닥치면서 공소 신자 수가 급감했다. 미사도 한동안 중단됐다. 감포공소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허연구 신부는 ‘하느님 섭리 안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각오로 교구에 감포공소 파견을 간청했다. 1934년생인 고령의 허 신부 건강을 염려해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2021년 3월 1일부로 허 신부는 감포공소에 파견됐다.

허 신부가 공소에 처음 부임하던 날, 곳곳이 거미줄이었으며 심지어 보일러가 한참 전에 터졌단 걸 발견했다. 한동안 아무도 찾지 않았던 공소에서 허 신부는 신자 1명과 미사를 봉헌했다.

허 신부는 공소 상주를 시작하며 주일미사와 평일미사를 봉헌했다. 공소를 누구나 와서 쉬어갈 수 있는 피정의 집처럼 아름답게 꾸몄다. 바닷가가 가장 잘 보이는 쪽에는 숙식이 가능한 카라반을 설치해 방문객 맞을 준비를 했다. 허 신부가 상주한다는 걸 입소문으로 알게 된 신자들이 감포공소에 하나둘씩 찾았고, 피정도 진행됐다. 그렇게 2년이 흘러, 현재는 10명 많게는 15명이 주일미사에 참례한다.

허 신부는 “50명을 영세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신부로서 즐겁게 개척해나가다 보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허 신부는 “바닷가가 바로 보이는 감포공소에 많이들 오셨으면 한다”며 “특히 냉담하는 분들을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문의 010-6603-1226 허연구 신부

대구대교구 경주 감포공소 신자들이 9월 17일 허연구 신부가 주례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