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봄 30년은 됨직한 백동백을 샀다. 샤넬의 로고처럼 우아한 백색 꽃이 피는 나무였다. 우리 집으로 실려 온 백동백은 그러나 잘 적응하지 못했다. 모든 동백들은 원래 두 번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한 번, 그리고 땅에서 한 번. 동백들이 그 피어남의 절정에서 꽃을 통째로 버림으로써 땅에서 한 번 더 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30살이 넘어 우리 집에 온 백동백은 그 꽃들을 떨어뜨리지도 못하고 시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눈을 뜨면 마당으로 내려가 시든 꽃을 땄다. 시든 꽃이 달려 있는 건 이미 동백이 아니었다. 동백이란 그 꽃의 절정에서 가차 없이 그걸 버려서 동백이 아니던가. 아침마다 그렇게 해주자 비로소 새 꽃들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야 뿌리가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야 알게된 일이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나무는 열병을 하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시든 꽃을 버리는 것하고 새 뿌리를 내리는 것이 그토록 상관이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무렵 나는 86세대의 맏이인 내 동기들의 부정부패 사건들을 –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 접하게 되었다. 같은 과 친구가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 죽었던 것이 1981년, 광주학살이 일어난 이듬해인 대학 1학년 때였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학살과 독재를 옹호하던 보수는 ‘무조건’ 나쁘고 저항하는 진보는 ‘무조건’ 옳아도 얼마간 괜찮았던 것이. 전쟁터 같았던 우리들의 청춘, 죽고 죽이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으니 그렇게 믿어도 실제로 큰 오차가 없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회상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비난하던 세대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나이를 먹었고 그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권력들을 쥐었다.
오늘도 그저 어제처럼 사는 것, 내게 젊은이들보다 알량한 권력이 약간 있어, 어제처럼 살아도 나는 불편하지 않고 나만 불편하지 않는 것, 이것이 죽음보다 못한 늙음은 아닐까. 마치 서른 해를 살고 우리 집으로 이사 와 병들어 꽃을 떨구지 못했던 그 백동백처럼 우리 세대도 병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 나는 알았다. 새것이 오기 전에 옛것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때가 있는데, 이 버리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사람이든 꽃이든 사랑이든 물건이든 제가 이루어냈던 과거의 꽃 같은 영화로움이든. 그러니 버릴 힘도 없을 때는 마치 내가 억지로 시든 꽃을 떼어주듯이 무엇인가가 그것을 강제로 떼어놓아야 할 것이지만, 우리 세대는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시든 꽃을 가리키는 손목들을 잘라버리고 있다. 우리는 독재자와 그 옹호자들을 많이 생각했었고 그들과 많이 맞섰기에 더 그들을 닮았다.
진보와 보수 같은 이분법적 사고는 이즈음 거의 초등학교 운동회의 청백전 같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다만 나는 안다. 내 자신이든, 단체든, 어떤 정당이든, 어떤 세대, 혹은 국가 전체이든 철이 지나 시든 것들을 버리지 못하면, 강제로라도 잘라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다 함께 죽는다는 것을. 그것은 목숨을 좌우하는 뿌리와 맞닿는 일이라는 것을. 그러니 죽느냐 버리느냐, 이것이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