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에서 누군가 “심폐소생술 하실 수 있는 분 계신가요”라고 소리쳤다.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심폐소생술 하는 법은 아는데, 섣불리 나섰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누군가 나서지 않을까?’ 불과 몇 초도 안 되는 순간에 생각이 교차했고, 곧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긴급 상황에 모두 똑같이 ‘누군가 나서지 않을까’라 생각한다면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누군가의 도움으로 119가 출동했다. 그제야 내가 할 줄 모르더라도 119에 신고하고 지시에 따라 협조하면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차분히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당황만 하고 있었다는, 긴급 상황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반성을 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이다. 죽음도 그렇다. 거의 모든 죽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 또 나의 죽음을 위해 나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11월 2일 수원교구 위령의 날 미사에서 이성효(리노) 주교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라는 복음말씀을 들며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는 겸손”이라고 말했다.
겸손(humilitas)은 흙(humus)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다. 인간(human)이란 말의 어원도 흙에서 왔다. 어쩌면 흙에서 온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겸손으로 준비하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사는 생명의 길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흙으로 돌아간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 성월을 맞아 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