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입사 면접에서 롤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 당차게 “이태석 신부님입니다”라고 답했던 열아홉 살의 소녀는 스물다섯 살이 된 해에 대건청소년회 청소년들과 함께 라오스에서 봉사하게 됐다. ‘흔히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곳에 내가 많은 도움이 돼주고 와야한다’라는 책임감으로 라오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마주한 라오스에서 나의 책임감이 얼마나 하찮은 교만함이었는가를 곧 체험할 수 있었다.
라오스에서 만난 친구들, 이웃들, 그곳의 모습들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라오스와 대한민국의 경제나 발전수준을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가 잘 발전된 나라인 것은 맞다. 하지만 공평하신 하느님께서는 라오스 친구들에게 조금은 덜 발전된 환경을 주신 대신 그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겸손한 마음을, 그리고 아날로그적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심어주신 것 같았다. 어쩌면 다양한 사회의 강박 속에 살아가는 나에게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나를 라오스에 보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가 심한 장난을 쳐도 “버뺀냥~”, 실수로 내가 발을 밟아도 “버뺀냥~”, 맛있는 음식을 내가 다 먹어버려도 “버뺀냥~” 이렇게 모든 일에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라오스의 그 문화는, 나 잘난 맛에 교만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상처받고 상처를 주었던 나에게 어쩌면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사랑이 됐을지도 모른다.
2019년 여름의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빠듯한 일상 속에 정신없이 살아가고, 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흔히 말하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종종 만나는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불편함을 줄 때도 있고, 나에게 화를 줄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슬픔을, 또 어느 때는 사랑을 주기도 한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는 라오스에서 만났던 그 모습처럼 “버뺀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CCM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주의 꿈을 안고 일어나리라. 선한 능력으로 일어나리라. 이 땅의 부흥과 회복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리!”
내 주변의 이웃이 나에게 괜찮다고 해주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 자리에서, 내 마음을 다해 “버뺀냥~”하고 말할 수 있다면 어느샌가 나의 주변 또한 모든 게 다 괜찮은, 다 이해하고 서로 용서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셨던 조건 없는 사랑과 용서를, 나 또한 내 이웃에게 조건 없이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다시 한번 다짐한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