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말했다.
“우리 딸 셋 중에 미카엘라는 꼭 수녀님으로 봉헌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나도, ‘나는 수녀님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오라고 할 때면 언제나 생활기록부에는 ‘수녀님’이라는 세 글자가 자리했다. 하지만 그러한 꿈은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할수록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성인이 된 언젠가, 다시 봉사의 삶을 찾았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이렇게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한 수녀원을 찾아 성소모임을 나가기 시작했다. 명절에 고향에 가지 않고 수녀님들과 함께 보내기도 했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생소한 성무일도도, 해가 채 떠오르기도 전에 일어나 미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피곤하지만 거룩했던 시간도 모두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의 행복한 감정만으로 이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없었다.
‘수도성소가 나의 성소가 아닌 것은 알겠고, 그렇다고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나의 성소는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의 이런 고민과 생각은 신앙과 어긋나는데, 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고민들은 내가 마치 가톨릭 교리를 부정하는 죄인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들게 했다.
더 이상 혼자 짊어지고 있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당시 봉사하고 있던 단체의 청년들과 신부님에게 나의 고민을 나누었고 신부님에게서 이러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미카엘라,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는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성소든지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에요. 지금 미카엘라가 봉사하면서 느끼는 그 사랑이 바로 미카엘라의 성소이고 부르심일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은 순간 어딘가에 꽁꽁 묶여있던 나의 마음은 자유를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중점을 두기보다, 지금의 내 삶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이것이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그 삶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을 안다. 하지만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는 바리사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자유로움 속에서 마음껏 사랑을 실천하는 참 신앙인이 되기로 했다. 나는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저의 성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모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