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은 1845년 8월 17일 사제품을 받고 약 13개월 동안 활동하다 순교했다. 그마저도 많은 시간을 감옥에서 보냈기에 체포되기 전까지 신자들을 만나며 사목한 것은 겨우 6개월 남짓이었다.
성 김대건이 이 6개월간 어떤 사목활동을 펼쳤는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다만 여러 사료와 증언을 통해 성 김대건의 사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성 김대건은 서울이나 강경 등에서도 활동했지만, 특히 용인지역과 은이를 중심으로 사목을 펼쳤던 것으로 보인다. 시복재판 자료에 따르면, 오 바실리오는 1846년 봄 은이마을에서 성 김대건을 봤다고 증언한다. 임 루치아도 양지의 터골에서 성 김대건에게 성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성 김대건이 체포되기 전 신자들과 함께 봉헌한 마지막 미사인 1846년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성 김대건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있던 은이마을에서 봉헌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6개월 동안 성 김대건을 만난 신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그가 얼마나 열성적으로 사목했는지 보여준다.
남경문(베드로) 성인은 성 김대건을 통해 회개의 삶을 살다 순교했다. 남경문은 회장으로 활동하다 기해박해 때 배교하고 8년에 걸쳐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성 김대건을 만나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으며 죄를 뉘우쳤고, 매일 기도와 고행으로 과거를 속죄했다. 그리고 성 김대건이 체포되자 자신도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다 붙잡혀 순교했다. 남경문만이 아니었다. 성 김대건의 시복재판 자료에 따르면 이 베드로는 “교리를 설명하고 교우들을 가르치는데 기쁨과 열성을 다했고, 큰 열성으로 성사를 집전했다”고 김대건을 기억했다. 김 프란치스코는 “모든 교우들이 이 신부(성 김대건)를 많이 사랑했으며, 그들은 오로지 신부를 칭찬할 뿐이었다”고 밝혔다.
성 김대건은 옥중에서도 사목을 멈추지 않았다. 옥중에서도 꾸준히 성사를 집전하며 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봤다. 또 자신을 심문하며 박해하는 사람에게까지도 복음의 진리를 선포했다.
옥중에서도 열성적이었던 성 김대건의 사목을 증언하는 인물이 바로 임치백(요셉) 성인이다. 임치백은 옥중에 있던 성 김대건에게 가르침을 듣고, 옥중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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