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받은 탈렌트 활용해 앞으로도 행복하게 그림 그릴 겁니다”
유학 중 신앙의 매력에 푹 빠져
1977년부터 가톨릭미술가회 활동
한국적 성모 등 토착화에 노력
고집 센 미술학도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즐겼어요.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집에선 못 가게 했어요. 어머니께서 의사셨는데, 어머니는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어요. 결국 대학은 미대도 의대도 아닌 생물학과에 입학했어요.
원래 식물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생물학과에서 식물을 전공하며 교수님들 책에 들어가는 식물들의 삽화를 그렸어요. 교수님들도 제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아시고 많이들 부탁하셨죠. 그렇게 1년을 다녔는데, 운이 좋게도 당시 미술대학 편입시험이 있었어요. 부모님 몰래 시험을 치르고 서양화과로 편입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예술의 중심지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어울려 살며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 프랑스 유학을 결심했죠. 집에서는 안 보내려고 했어요. 어머니께 2년만 가서 살게 해 달라고 간청했어요. 나중에 혼수비용 달라고 안 할 테니 미리 달라고요. 완전 배짱이었죠. 대학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치며 모은 돈으로비행기표를 사고 2주 후에 출발한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기가 차서, “그럼 2년만 있다가 와라” 하시더라고요.
프랑스 유학과 템페라 기법
프랑스에서는 판화를 공부했어요. 입학 때 포트폴리오로 나무 판화를 제출했는데, 학교에서 “너는 나무판을 잘 파니까 인그레이빙(engraving)을 해봐라”하면서 동판에 인그레이빙하는 판화를 전공하는 교수를 배정해줬어요. 뷰랭(burin)이라는 도구로 동판을 깎는 기법이었는데, 처음 해보는 거였죠. 그런데 그게 굉장히 매력 있더라고요. 뷰랭으로 동판을 깎으면 구리선이 실처럼 나오는 데, 그게 그렇게 느낌이 좋아요. 한번은 알프스로 등산을 갔는데, 거기가 하도 좋아서 알프스 전경을 그린 굉장히 큰 판화를 하나 만들었어요. 이 작품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도 소장을 할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어머니와 약속한 2년이 지나고도 프랑스에 눌러 앉았어요. 집에서는 한푼도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죠. 그런데 그게 전화위복이 됐어요. 학교에서 그리스에서 온 한 작가를 알게 됐는데, 그의 아버지가 비잔틴박물관 관장이었어요. 그를 통해 템페라 기법을 알게 됐어요. 템페라는 달걀노른자를 고착제로 색채 안료를 섞어 그림을 그리는 기법인데, 이게 한번 그리면 튼튼하게 오래 가요. 가는 붓으로 여러 차례 기도를 바치듯 그림을 그렸어요. 어쩌다보니 우리나라에 템페라 기법을 처음 도입한 셈이 됐어요.
성미술의 세계로
저는 대학 졸업 무렵 세례를 받았어요. 프랑스 유학 중에 견진성사를 받았고요. 더 일찍 세례를 받을 기회도 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어머니께서 당시 세례를 받으셨어요. 교리를 배우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가서 어머니 옆에서 졸기도 했었죠.
암튼 세례를 받고 프랑스에 왔는데, 그곳에서 가톨릭 신앙에 푹 빠지게 됐어요. 기숙사도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고,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사장이 신자였고, 친구 부모님들도 다 신자였고요. 자연스럽게 신앙에 발을 깊게 들이게 됐죠.
한국에 돌아와 1977년부터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1984년 한국 가톨릭교회 2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열었던 ‘영원의 모습’ 전시를 위해 실무진으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프랑스 유학에, 남편을 따라 독일에 살던 경험까지 겹치면서 외국어가 가능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면서 템페라 기법으로 여러 성당에 십자가의길 14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서울이고 춘천이고 해달라고 하면 다 해줬어요.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른 분야에도 계속 도전했고요.
특히 성미술 토착화에도 신경을 썼어요. 왜 우리가 성모님을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면서 서양 사람으로 그려요?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도 원주민 모습이잖아요. 그래서 얼굴이 동글동글한 한국인의 모습으로 성모님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올해 어떤 학생이 한국교회 미술의 토착화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데, 제 작품을 연구한다고 하더라고요. 고맙죠.
행복한 신앙인의 삶
지금 80대 중반인데도, 그림을 그리고 이것저것 만드는 게 좋아요. 주님께서 건강을 허락해주신 덕분이겠죠. 신장이식도 받고 고관절 수술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정말 복이에요. 저는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예술가가 뭐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같은 경우는 운이 좋아 부유한 부모를 만나서 재능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요. 그림을 그리는 재주,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 사람들도 공부를 했으면 예술가가 될 수 있었을 거예요.
조만간 또 전시회를 열 예정이에요. 누군가 내 작품들을 보고 찾아준다는 건 행운이에요. 하느님께서 제게 그림을 그리는 탈렌트를 주셨고 저는 계속해서 행복하게 그림을 그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