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공동번역성서」 현 주소와 과제는?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4-01-09 수정일 2024-01-09 발행일 2024-01-14 제 337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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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2000여 권 판매 그쳐
‘신구교 일치’ 취지 살려야
‘2300권’. 2023년 「공동번역성서」 판매량이다.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번역해 공동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공동번역성서」의 최근 1년 판매량에는 한국 신구교가 기울여 온 교회일치 노력의 현 주소와 과제가 모두 함축돼 있다.

「공동번역성서」는 1960~1970년대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교회일치 움직임의 상징물이다. 1968년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공동 번역 결의에 따라 한국에서도 같은 해 신구교가 참여한 ‘한국성서공동번역위원회’가 조직됐고,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온 데 이어 1977년 「공동번역 신약성서」 개정판과 구약성서 번역본을 합한 「공동번역성서」가 출간됐다.

「공동번역성서」가 처음 나왔을 때는 한국 신구교가 교회일치 여정에서 금자탑을 쌓았다는 극찬까지 받았지만 당초 취지와는 달리 개신교 대부분의 교단에서 번역 용어와 직역보다 의역에 가깝다는 번역 문체를 문제 삼아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지 않고 개신교 자체적으로 번역한 성경을 고수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동번역성서」는 가톨릭과 대한성공회, 한국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소수 진보적 교파에서만 사용하는 성경으로 의미가 축소됐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총무 임민균(그레고리오) 신부는 “한국에서 「공동번역성서」가 처음 나왔을 때는 세계적으로도 신구교가 공동으로 성경을 번역한 예가 거의 드물었기 때문에 센세이션으로 평가됐다”면서도 “2005년 한국 가톨릭이 독자적으로 번역한 「성경」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일치 주간’에 열리는 일치기도회에서 「공동번역성서」가 사용되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의미를 찾기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동번역성서」가 본래 지니고 있는 교회일치 정신과 교파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기 쉬워야 한다는 번역 원칙은 현재에도 유효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회일치 운동 핵심 기구로 2014년 5월 출범한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공동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김종생 목사)는 「공동번역성서」의 제작 취지를 살려 궁극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새로이 성경을 공동번역해 한국 그리스도교 전체가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현재로는 신구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회 용어 통일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도 「공동번역성서」를 제작하고 있는 (재)대한성서공회에 따르면 연 평균 2000여 권의 판매량 상당수는 대한성공회에서 새 신자용으로 구입하고 있지만 그 외에 성경학자들과 각 교단 신학교, 연구소 등에서도 꾸준히 구입해 성경 연구와 더 나은 번역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개신교 교단 중 교회일치에 가장 적극적인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들은 현재도 예배 중 설교에 인용되는 성경 구절을 개신교 번역 성경과 「공동번역성서」 모두를 낭독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김승태 목사는 “남북이 통일됐을 때, 남북한 교회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성경은 「공동번역성서」여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목회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