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작가는 “날씨가 사람을 바꾼다고 늘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이 문명 위에 있기 때문에 잘난 척할 수 있는 것이지, 허허벌판에 내던져진다면 나약하고 무능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재난의 반대가 평화일까요. 저는 일상이 아닐까 해요. 재난이 닥치면 저는 일상이 제일 그리울 것 같아요.”
강 작가는 생태적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고, 또 재난으로 자신을 둘러싼 생태, 일상이 무너지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 이들에게 주목했다. 강 작가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일본대지진 피해자들의 인터뷰였다. 지진과 쓰나미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이상하리만치 벚꽃의 아름다움을 말했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허둥대고 있었다. 강 작가 자신도 일본여행 중 겪은 지진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강 작가는 “지진이 나면 사람들이 대화를 하게 되는구나,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면서 “그렇게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이야기, 나의 고유함을 생각하고 서로 말하면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사소한 일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고유한 모습, 소설에 등장하는 ‘칩’이나 신분을 증명하는 어떤 데이터로도 담거나 통제할 수 없는 진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작가는 앞으로도 문학을 통해 무너진 일상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해 나가는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산업재해나 대리모, 또 과학기술과 관련한 어려움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이들, 특히 그중에서도 그런 재난에 맞닥뜨린 여성의 서사를 담아나갈 생각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무언가 정신없이 지나가기는 하는데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은 냉정하니까 우리가 이러거나 말거나 막 지나가잖아요. 소설은 현실에서 있어선 안 되는 상황을 상상해서 쓰지만, 이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 강영숙 작가는…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8월의 식사」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아령 하는 밤」,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회색문헌」, 「두고 온 것」 등 여섯 권의 소설집을 냈다. 장편소설로는 「리나」, 「라이팅 클럽」,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등을 썼다. 2006년 첫 장편소설 「리나」로 제39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2011년 제4회 백신애문학상과 제5회 김유정문학상, 2017년에는 제18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