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대림 특집] 신앙선조들의 대림 시기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12-13 수정일 2022-12-13 발행일 2022-12-18 제 332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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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켜켜이 쌓은 신앙… 그 간절함 하늘에 닿았네
박해에도 굴하지 않은 신앙심
미사 봉헌할 수 없는 상황에도
기도와 교리 공부에 힘쓰며
세상에 오신 주님 탄생 축하

구세주를 기다리는 대림 시기. 이 시기의 전례는 신앙인들에게 구세주의 오심을 기쁨과 희망 속에서 깨어 기다리도록 강조한다. 구세주가 오고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구원의 소식은 신앙인들에게 기쁨으로 가득 찬 새로운 미래를 약속한다. 기쁨과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박해 시기, 신앙선조들에게 대림은 어떤 의미였을까.

신부를 만날 수도 없고, 미사를 드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려야 했던 신앙선조들. 산 깊숙한 곳에 숨어 숨죽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려야 했지만 간절한 기도는 기쁨과 희망을 찾기에 충분했다. 끝없는 기도로 대림 시기를 보낸 선조들의 신앙생활은 지금의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의미를 다시 찾게 한다.

교회력에 따른 주요 축일을 기록한 초기교회 신앙선조들의 첨례표.

■ 대림 시기, 신앙선조들의 기도와 실천

1969년 「가톨릭기도서」가 나오기까지 전까지 1862년 목판으로 인쇄돼 한국교회의 공식기도서로 사용됐던 「천주성교공과」에는 대림 시기를 ‘장림’(將臨)이라 표기하고 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기라는 뜻이다. 1866년 전례력을 보면 12월 2일을 시작으로 9일과 16일, 23일에 4주의 대림 주일을 보낸 것으로 기록됐다.

신앙선조들의 복음묵상을 도왔던 「성경광익」에는 주일과 축일에 묵상할 성경구절과 묵상 자료, 묵상 후 실천해야 할 덕인 ‘의행지덕’(宜行之德), 묵상 후 해야 할 기도인 ‘당무지구’(當務之求)가 실려 있다. 신앙선조들은 대림 4주 동안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우리나라 왕을 위해, 세상의 미혹한 자들을 위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또한 통회하고 거룩한 도우심을 따르고 겸손한 덕행을 쌓으며 3주를 보낸 뒤 공심판을 생각하며 대림의 마지막 주를 보냈다. 대림 4주간 계속된 기도는 주님 성탄 대축일 밤 ‘가난하며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예수님의 표양을 따를 것’을 신앙선조들은 다짐했다.

■ 어떤 기도 바쳤나

대림 시기 신앙선조들이 특별히 바쳤던 기도문은 아기 예수 호칭 기도문이다. “미미하지만 존귀하신 아기예수, 나그네로 계시지만 주인이신 아기예수, 은총의 곳간이신 아기예수” 등 아기 예수를 부르며 기도를 시작한 신자들은 “당신께서 지극히 겸손되이 강림하심을 위하여, 당신 가난의 괴로움을 위하여, 당신 할례의 그 아픔을 위하여, 당신께서 삼왕에게 큰 빛으로 보이심을 위하여, 당신께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시던 정성을 위하여, 당신이 걸으셨던 노고를 위하여 죄인들이 청하오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바쳤다.

세상을 떠난 아기들, 임산부를 위한 기도가 포함돼 있는 것도 특별하다. 신앙선조들은 “임종한 아기들이 세례의 은혜 얻기를 구하오니, 임산부들에게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순산함을 주시기를 구한다”고 기도하며, 대림 시기에 세상을 떠난 아기, 앞으로 태어날 아기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리고 기도를 마무리하며 하늘에서 당신의 존귀하심을 보게 해줄 것을 청했다. “비오니 저희로 하여금 당신 아기의 무한하신 지혜를 알고 당신 쇠약함 속의 당신 온전하신 권능을 알아뵙게 하소서. 또한 이 땅에서 당신 비천하심을 흠숭해 하늘에서는 당신 존귀하심을 보게 하소서.”

「천주성교공과」.

■ 끊임없는 기도로 하느님과 함께한 신앙선조

성호경에서 시작해 초행공부, 천주경, 성모경, 종도신경, 고죄경, 관유하심을 구하는 경, 사하심을 구하는 경, 성 아타나시오 신경, 영광경, 그날의 기도문과 찬미경 등 주일과 첨례(축일)날 신자들이 해야 할 기도는 18가지에 달했다. 대림 시기에는 아기 예수 호칭 기도문까지 더해 19개의 기도를 해야 했다.

최양업 신부는 1850년 10월 1일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서한에서 “조선에서는 일상 기도문이 짧지 않은데 바르바라는 그것을 모두 암송했다”고 했으며 1858년 10월 3일 서한에서 “겨우 8~10세밖에 안 된 어린 꼬마들이 교리문답 전체와 굉장히 긴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경문을 청산유수로 외우는데 그 광경은 신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라고 전하며 당시 기도문이 길었을 뿐 아니라 개수도 적지 않았음을 전하고 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는 “박해시기 신앙선조들이 해야 할 기도문은 길고 양도 많아서 첨례날 기도문을 다 하려면 반나절이 걸릴 정도였다는 증언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천주성교공과」에는 공동기도하는 절차가 상세히 나와 있다. ‘각 축일마다 경문을 정해 놓았으니 모든 의무축일에 공소에 모이거나 각 집의 가장이 집안사람을 거느리고 주일과 각 축일에 정한 경을 외워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천주성교공과」를 얻지 못한 교우들은 대송으로 십자가의 길을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주님의 기도 두뀀(33번씩 2번)을 바친다고 정한다’,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교우가 「성경직해광익」을 보고 그 도리를 밝히고 다른 교리를 배워서 아랫사람들을 가르친다’ 등의 규식을 지켜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규식을 정해 놓았지만 실제로 신자들이 이를 지켰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서양 선교사들의 편지를 통해 신자들이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신앙을 지켜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1월 4일, 가족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교우촌의 풍경을 ‘아름답다’고 전하고 있다.

“제가 종종 듣는 소리라고는 교우들이 보다 좋은 날들을 하늘에 청하는 기도 소리와 우리를 이곳에 데려와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소리뿐입니다. 다투는 소리도 없고 오직 들리는 소리는 간간히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뿐이지요.”

베르뇌 주교도 조선 신자들의 기도생활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주일이 되면 12명 내지 15명의 교우들이 어떤 때는 집에 어떤 때는 다른 집에 모이는데, 비신자들에게 뒤를 밟히지 않도록 항상 아주 몰래 모입니다. 교우들은 주교가 정해준 기도문들을 함께 작은 소리로 암송하고 그날의 복음에 관한 해설을 듣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시간은 묵주기도를 바치고 교리를 배우고 아이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데 보냅니다.”(앙리 드 라 부이으리 남작에게 보낸 1857년 9월 15일자 서한)

미사도, 성사도 없는 가운데 선조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말씀과 기도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그에 따라 살고자 노력했던 그들 곁에는 항상 하느님이 함께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