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교 미술에 다양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토끼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도 토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등장한다. 1480~1790년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쾌락의 정원’은 에덴동산을 묘사하고 있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아담과 무릎을 꿇고 있는 하와.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하와의 손목을 잡고 아담 쪽으로 이끈다. 사랑이 맺어지는 순간, 주변을 채우고 있는 동물들은 평화로움을 상징한다. 그림에는 코끼리, 기린 등 많은 동물이 등장하는데 하와 가까운 곳에 그려진 토끼는 풍요를 의미한다.
베르트람 폰 민덴의 ‘그라보 제단화’(1379-1383년)에도 하느님이 창조하신 동물 중에 토끼가 등장한다. 한 마리씩 그려진 다른 동물들과 달리 세 마리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은 토끼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함을 보여준다.
앞다리가 짧은 토끼는 내리막보다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빠른 뜀박질로 바위나 높은 곳을 향해가는 토끼는 악마의 유혹에서 도망쳐 높은 곳에 있는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이미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피에타’, ‘게세마네에서의 고통’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에도 토끼의 이러한 특성이 묘사된다. 1475~1479년 그린 ‘그리스도의 부활’에는 동이 틀 무렵, 한 손에는 승리의 깃발을 들고, 또 다른 손은 세 손가락을 편 채 하늘로 올라간 예수 그리스도가 묘사된다. 그림에는 두 가지 동물이 등장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후 빈 무덤 위로 솟아있는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펠리컨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펠리컨은 자신의 옆구리를 쪼아 피를 낸 뒤 그 피로 새끼를 살린다고 알려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빈 무덤 위에는 두 마리 토끼가 그려져 있다. 두 토끼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언덕 위로 뛰어가고 있는데, 이는 구원에 대한 열망을 상징한다.
1530년 이탈리아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가 그린 ‘성녀 가타리나와 토끼와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Madonna and Child with St Catherine and a Rabbit)에는 성모 마리아가 하얀 토끼를 잡고 있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함과 동시에 동정녀 성모마리아의 잉태를 하얀 토끼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