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현(모세) 신부(성바오로수도회,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시노달리타스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를 준비하며 처음에는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하는 데 도움 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 예상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강생 입장에서 강의에 참석하고 또 다른 수강생들 질문을 접하면서, 시노달리타스는 최대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수렴하는 작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강의가 끝날 즈음 시노달리타스와 관련해 효율적인 의견수렴 과정에만 주목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시노달리타스를 진행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교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유기체로서의 교회가 어떻게 그것을 수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매우 입체적인 과정이라고는 것을 깨달았다.
시노달리타스 과정은 그 자체로 교회와 구성원들 모습을 드러내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보게 됐다.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의견수렴의 효율성만으로 시노달리타스를 바라보는 것은 시노달리타스의 본래 취지를 발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특히 한 가지 주제 때문이었다.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강의에서 공통으로 ‘시노달리타스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언급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노달리타스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적 틀을 제공하기 위해서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측면이 강조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의가 계속될수록 시노달리타스가 실현되고 있는 현장에서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의와 등치시키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음을 보게 됐다.
수강자들도 시노달리타스는 민주주의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시노달리타스는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다양한 구성원들 목소리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는 절차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측면을 강조한 배경에는 수렴된 의견이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의적 의견수렴으로 한정시키는 배경에는 사목자의 독단적 의사 결정 구조에 대한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