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쪽진머리에 정갈한 옷차림, 거친 경상도 억양의 사투리로 저를 주눅 들게 했던 시어머니의 첫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경상도 산골에서 가세가 기울어 넉넉하지 못한 층층시하에서 오남매를 키우셔야 했다. 그 거친 삶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 와중에도 자녀들 앞날을 걱정하며 결심 끝에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서울로 상경,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억척스럽게 어머니 역할을 해내셨다. 어쩌면 덕분에 나의 짝 다미안을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 감사드린다.
어머니와 나는 음식 취향도 성격도 아주 비슷하다. 목소리도 비슷해서, 시누이는 “엄마랑 언니는 목소리 힘이 없어지면 늙은 거야”라며 농을 하기도 했다. 남편과 싸울 때도 진심은 아니실 수 있겠지만 무조건 내 편이 되어 주셨다.
신혼에 밥상을 들고 가다 그릇을 깨뜨렸을 때는 “그릇도 깨져야 그릇 장사가 먹고 산다”며 당황하는 나를 편하게 해주셨다. 맞벌이 친정엄마를 대신해 출산 후 산후조리도 2개월 동안 해주셨다. “너는 앞으로 이 집 안을 잘 챙겨야 하는 소중한 사람이니 건강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결혼 전 개신교 신자였던 내게 한 번도 개종을 권유하지 않으셨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 속마음의 인자하심과 지혜로움이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증이 생길 무렵,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의 모습이셨는데도 묵주기도를 하시는 모습이 섬광처럼 내 심장 깊숙이 들어왔다.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고민이 컸던 때였기에 그 모습은 특별한 부르심으로 나를 변화시켰다.
세례를 받았고, 카리타스 성녀의 삶을 본받아 순명하며 사는 삶을 선택했다. 매사에 기쁨과 평화가 늘 함께했다. 힘들고 지칠 때는 더욱 주님께 의탁하며 지혜를 청하였고 기쁘고 행복할 때도 겸손하게 주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자비와 은총을 구했다. 하느님은 게으른 나를 위해 봉사의 도구로 채찍질하셨고, 포도나무 가지에 매달리게 도와주셨다. 죄인인 나를 붙잡아 주시고 당신 자녀로 안아 주셨다. 나의 자녀들 그레고리오, 요셉, 체칠리아에게도 내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신앙의 유산을 아낌없이 물려주고 싶다.
나의 삶과 신앙생활에 나침반이 되어주신 어머니는 올해 96세. 비록 육체는 무릎 관절이 불편하신 상태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묵주기도와 성경 읽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가족과 다른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신다. 봉사하러 성당으로 향하는 나를 위해서도 기도와 응원을 해주신다. 어머니의 기도와 응원은 나의 발걸음과 마음을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게 만든다.
순결, 평범, 무죄, 순수하신 백합같은 성모님께 구하오니 저희 수산나 어머님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