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놀 외방 전교회 캐롤(George M. Carroll, 1906~1981) 몬시뇰은 1931년 2월 사제로 서품됐다. 선교사로 자원한 그는 같은 해 8월 처음 조선 땅을 밟았으며 평안도 지방의 마산본당을 시작으로 안주, 운향, 서포 등지에서 사목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에 의해 체포된 캐롤 몬시뇰은 이듬해인 1942년 6월 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해방 이후 한국에 재입국해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6·25전쟁 초기 군종 제도 신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군종신부로서 그가 만난 전쟁은 말할 수 없이 참혹했다. 다음은 그가 1950년 12월 12일에 쓴 일기인데,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이후 ‘부역 혐의자’들로 가득 찬 서대문형무소의 비참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국제적십자 대표와 함께 형무소를 방문했다. 상황은 끔찍했다. 사람들이 꽉 차 있었는데 매일 대략 30명이 굶어서 죽었다. 병원은 최악이었다. 실제로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12구의 시신이 던져진 시체 안치실을 봤는데, 시체 위에 다른 시체를 쌓아 놓았다. 좁은 감방에 여자들이 젖먹이 아기들과 있었다. 감방 두 군데에서 아기 두 명이 조금 전에 죽었는데, 그 작은 시신은 아직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많은 남자들과 많은 여자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공산당에 협력한 죄로 들어와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아직 재판을 받지 않았고, 몇 달째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십자 대표는 매우 많이 화가 났다. 사실을 은폐하려는 형무소 당국의 명백한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끝날 기미가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가난한 약자에게 더 가혹한 전쟁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전쟁을 규탄하시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전쟁과 가난, 불의가 삼켜 버린 모든 어린이들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최근 여러 전문가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우려하고 있다.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반복되고 있는 ‘팃 포 탯’(Tit for Tat, 맞불 놓기) 전략은 더 큰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평화의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2023년 새해에는 분쟁이 있는 모든 곳에서 평화를 위한 대화가 새롭게 시작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