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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길 위에 서다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1-11 수정일 2023-01-11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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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노동자들의 목소리 함께 외치고자
교회 가르침에 따른 노동은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여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과정
하느님 모상으로 닮아가는 길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 수호
노동자들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현장에서 함께 기도하며 연대
타종교와 손 잡고 해법 모색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노동사목위원회·빈민사목위원회가 지난해 12월 8일 노동자들과 함께 서울시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12월 28일,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성당이 아닌 거리로 나와 미사를 봉헌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이하 서울 노동사목위),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산교구 노동사목,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 등 5개 단체에 소속된 수도자와 성직자들이 추위 속에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이유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강론에서 예수회 김정대(프란치스코) 신부는 “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하면 불이익을 당하게 하는 법 아래에서 노동은 징벌이 되고 노동자는 노예가 된다”며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2월 8일에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평화위원회·노동사목위원회·빈민사목위원회 주관으로 서울시에 약자와 동행하는 상생도시 공약 실천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진행했고, 10월 7일에는 SPC그룹이 4년 전 했었던 ‘사회적 합의’에 대한 이행을 촉구하며 시민단체가 주관한 릴레이 1인 시위에 서울 노동사목위원회도 함께했다. 2018년 1월에 노동자 직접 고용, 3년 내 본사 정규직과 동일 임금 맞추기, 부당노동행위 관리자 처벌 등의 내용이 담긴 ‘사회적 합의’를 약속했던 파리바게뜨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시민단체와 동행, 가톨릭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나온 이유는 노동자의 존엄이 존중받는 세상을 염원하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인간이 왜 존엄한지는 성경을 통해 드러난다. 창세기 2장에는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노동하는 인간」 25항에서 “창세기 맨 첫 장에서 발견되는 창조에 대한 이러한 서술은 어떤 의미에서 최초의 ‘노동의 복음’이다”라며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의 존엄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즉, 인간만이 홀로 하느님을 닮았다는 독특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인간은 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창조주인 하느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을 창세기는 가르쳐주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른 노동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여 세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과정이며 인간 자신이 하느님을 닮아 나아가는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노동하는 세상’에 속해 있으며 인간의 노동을 이해하고 존중하신다는 것을 그분의 분명한 삶이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노동하는 인간 26항)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은 노동하는 인간이 존엄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이러한 그리스도 정신에 따라 한국교회에는 1971년 3월, 노동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서울대교구에 세워졌다. 도시산업사목연구회로 시작된 단체는 1980년 6월 노동사목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 2000년대 초반,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집중했던 서울 노동사목위는 노동문제상담소, 이주노동자쉼터, 외국인노동자상담소를 열고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듣고 그들의 손을 잡았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등 교구·수도회 소속 단체들이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 노조법 2·3조개정 운동본부 농성장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4년 이후 한국사회 노동현안에 집중하면서 케이블 방송노조 내 간접고용, 쌍용자동차 대량해고,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씨의 죽음, 콜텍 정리해고, 아시아나 케이오 부당해고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돕고자 함께 길 위에 섰다. 이 시기 개신교와 불교 등 타 종단 및 종교와 연대 모임을 시작한 서울 노동사목위는 종교적 차원에서 노동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서울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시몬(시몬) 신부는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는 피해를 입고 그들이 노동해서 얻은 이윤이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 구조”라며 “최근에는 노동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성당 밖에서 기도를 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기쁘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는 것’이 신앙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피켓을 들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농성장에 나오시는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몰려 누구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에 거리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알리는 것이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