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
시편 23편을 노래하던 마음은 어느새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에 있습니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풋풋한 풀 향기와 그 연녹색의 찬란함, 잔잔한 풀꽃에 매료되어 날듯이 풀밭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허리를 구부린 채 땅만 보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저를 봅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빠져 ‘그곳에 왜 있는지?’, ‘주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시는 것인지?’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흥미로운 일상에서 목자이신 주님과의 관계마저도 방해받지 않고 싶은 듯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았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피조물에 빠져 아쉬운 것 없이 마련해 주신 목자를 떠나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자기반성과 거의 동시에 문득 떠오른 노래가 있었습니다.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숴버리는,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헤르만 헤세 詩/ 서유석 번안 작사 작곡, ‘아름다운 사람’ 참조)
어디서부터, 언제까지 하느님께서는 이런 저를 지켜보셔야만 하셨을까? 소중한 사랑을 장난감처럼 다루다가 부숴버리고 잊어버리는 그 여인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까지 하는 노래 제목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습니다.
인간을 먼저 사랑하시고 끝까지 함께하시는 주님의 ‘그 아름다운 사람 사랑’이 뼛속 깊이 들어왔기에 지금까지 그냥 잔잔히 들었던 그 노래가 이토록 가슴을 찢는 애잔한 곡이었는지도 그때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갈 때도, 미사를 드릴 때도…. 저를 뒤흔들어 놓은 그 노래는 수시로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제멋대로 살아온 저를 돌아보게 되어 회개의 눈물은 며칠이 지나도록 사정없이 흘렀습니다.
주일 아침,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는 말씀대로 주님 안에 머무는 시간을 가진 후,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죄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 보속이 너무 간단하여 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마치 거대한 바닷물에 한 방울의 눈물이 삽시간에 바닷물과 하나가 되듯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크신 자비의 품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날 오후, 명동성당 근처에서 홍보 중이던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사랑의 장기기증행사가 눈에 크게 들어와 서슴없이 그곳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몇 년을 뒷걸음쳤던 장기기증과 안구 기증을 주님께서 주신 선물 다시 주님께 돌려드리는 마음으로 편안히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