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을 살리며 부활을 보내다
컵케이크에 들어가는 밀은 보통 밀과 달리 색이 어둡다. 붉은색을 띠는 앉은뱅이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토종밀인 앉은뱅이밀은 기원전 300년부터 우리 땅에서 자랐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이 가져가 농림 10호로 개량했다.
50~80㎝의 작은 키에 바람과 병충해에 강한 앉은뱅이밀은 낱알이 작고 찰기가 있으며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또한 지방 함량과 열량이 낮고 글루텐 함량이 적어 쿠키와 케이크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
하지만 1982년, 밀 수입 자유화가 이뤄지면서 국내 밀 생산 기반이 급격히 무너졌고 앉은뱅이밀은 한국인에게 외면받게 됐다. 2011년 기준 밀의 자급률은 1.0%. 더욱이 앉은뱅이밀은 색이 붉다는 이유로 한국인의 식탁에서 멀어졌고,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대전지구는 우리밀을 살리고자 직접 앉은뱅이밀 농사를 짓고 있다. 밀 농사를 시작한 대전지구 수녀들은 지난해 1t가량의 앉은뱅이밀을 수확했다. 고령인 수녀들을 제외하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원은 4명가량. 각자의 소임이 있음에도 수녀들이 시간을 쪼개 밀 농사를 짓는 이유는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다. 힘들게 수확한 앉은뱅이밀은 수녀회에서 쓰이는 빵을 만들거나 선물용 제빵을 하는 데도 쓰인다.
최 수녀는 “우리밀을 안 먹으니 생산이 줄었고 제분소도 거의 사라졌다”며 “우리밀을 먹을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기에 우리 수녀회가 노력해 보자는 의미에서 앉은뱅이밀 농사를 작게나마 짓게 됐다”고 말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녀들의 노력, 그리고 정성이 담긴 땀방울은 밀알 하나하나에 깃들어 또 다른 생명을 완성했다. 진정한 부활의 의미는 그렇게 작은 컵케이크에 담겨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최 수녀는 “우리밀 농사를 짓는 작은 실천이 생명을 살리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우리 신앙인들이 자연과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실천 속에서 부활 시기를 보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