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제가 되고 나서 오히려 집에 가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부쩍 전화도 하고, 집에도 가려 합니다.
작년, 이맘때 어머니를 만날 때의 일입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본다는 생각에 선물도 사고 용돈도 두둑이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지요. 1시간 정도 지나 어머니가 집에 오셨고, 저를 보자 손자와 손녀 사진을 계속 보여주셨습니다. 저도 자주 본 영상들이었지요.
그때 어머니는 온통 손자와 손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듯 보였습니다. 손자와 손녀를 참 사랑스럽게 보고 계셨지요. 하지만 저는 약간 서운한 마음에 “어머니, 그래도 밥은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성 빈센트 병원에서 임상사목교육(CPE)을 받으며, 어머니에 대한 저의 마음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와 어머니의 관계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지요. 저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나는 사건들을 더듬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유독 장남인 저를 누나나 남동생보다 잘 챙겨주셨습니다. 왜 저에게만 가장 좋은 것을 주냐고 두 살 터울의 누나는 어머니께 따지기도 했었지요.
어머니는 어린 저희에게 신앙을 물려주려고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저녁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고, 매일미사는 물론 철야도 가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공부에 대한 말씀보다는 미사에 다녀왔는지, 기도는 바쳤는지를 저에게 자주 물어보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장해가면서 조금씩 신앙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 기도를 해야 하지? 왜 미사에 가야 하지?’라는 물음이 제 마음 안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는 잘 설명해 주지 못하셨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삶으로 제게 신앙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읽어주지는 못하셨습니다.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시거나 “오늘 마음이 어땠어?”라고 물어주시는 분은 아니었지요. 부족한 아들 사제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시지만 제게 그 마음을 드러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와의 어린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고, 어머니에게 질문도 하고 저 자신의 마음도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리곤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지요. ‘우리 어머니가 이랬으면 더 좋겠다’가 아니라 지금의 어머니를 잘 받아들이고 싶다는 바람이었습니다.
더 좋은 어머니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내 삶에 함께해 주신 어머니가 계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