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생태학살 멈춰!” 일상 멈춘 시민들 한목소리
종교·시민·환경 단체 회원 4000여 명
기후정의 실현 위한 파업 집회
기후위기 주도한 이들에 책임 묻고
환경파괴로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취약계층 보호 대책 마련 촉구
황사로 하늘이 뿌옇던 4월 14일, 세종정부청사 인근 거리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 유모차를 끌고 있는 아이 엄마들, 수도복을 입은 수녀들,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모였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쌀포대를 둘러맸고, 밭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한 손에 호미를 들었다. 아이들은 석탄이 가득한 풍경 속에 울고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들고 있었다.
각자 다른 지역에서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른 이들이 한 곳에 모인 이유가 무엇일까?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후정의를 향한 사회공공성 강화로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라!”, “자본의 이윤축적을 위해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생태학살을 멈춰라!”
기후위기로 생태환경이 무너지고 사회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4000여 명의 시민들은 각자의 하루를 기후정의를 위해 투자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기후위기이기 때문이다. 세종시 일원에서 진행된 ‘기후정의파업’ 현장을 찾았다.
4000여 명의 시민, 왜 모였나?
전국 35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414기후정의파업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4월 14일 오후 2시 세종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앞에 모여 기후정의파업 집회를 열었다.
가톨릭기후행동을 비롯해 전국여성농민회, 불교환경연대,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 탈핵시민연대, 빈곤사회연대, 녹색연합 등 다양한 종교·시민·환경 단체 회원 4000여 명이 참여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앞 무대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들은 “정부는 생태를 학살하는 개발사업을 중단하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조직위는 “지금 수많은 시민이 전기·가스요금 인상 등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설악산 케이블카 등 각종 개발사업 추진으로 기후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며 “정부는 에너지·교통 분야의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고, 생태학살을 자행하는 개발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초안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내용이 담겼다”며 “우리는 강력한 기후정의 파업 투쟁을 통해 산업계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반드시 폐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직위가 정부에 제시한 요구 사항은 ▲에너지 공공성 강화로 에너지 기본권 보장 ▲에너지 기업들의 초과 이윤 환수 및 탈석탄·탈핵 추진 ▲기후위기 대응 위해 공공 교통 확충 ▲기후위기 대응과정에 노동자·농민·지역주민·사회적 소수자들이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 ▲신공항·케이블카·산악열차 건설 추진 중단 ▲그린벨트 해제 권한 지자체 이양 시도 철회 등 6가지다.
기후위기를 주도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위기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해 기후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게 이날 기후정의파업의 골자다.
따라서 요구사항의 핵심에는 기후위기로 파괴된 농어촌에서 살아야 하는 지역주민과 농민의 생존권 보장, 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게 될 원·하청 노동자의 일자리 보장, 기후위기 대응과정에서 제외된 장애인, 이주민, 빈곤층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의 민주적 참여 보장이 포함돼 있다.
함께 살기 위해 ‘멈추다’
집회 전, 각 단위 자율 행동 시간에 가톨릭기후행동은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 주례로 미사를 봉헌했다. 전국에서 모인 300여 명의 신자들은 기후위기로 뜨거워진 지구를 생각하고자 빨간색 옷을 입거나 빨간 손수건 등을 착용하고 미사에 참례했다.
박현동 아빠스는 강론에서 “‘공동의 집’인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고통받는 가난한 형제자매와 피조물들의 목소리를 듣고, 적극적으로 삶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며 “이것은 인간 형제자매들과의 연대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우리가 외치고 있는 ‘함께 살기 위해, 멈춰!’라는 구호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형제자매들과의 연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구 위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과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성찰하도록 초대하고 있다”며 “우리는 오늘의 행진에 참여하며, 가난한 형제자매들과 지구상의 피조물들과 함께하는 의지를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요일 오후 2시, 학교에 있거나 일터에 있어야 할 사람들은 휴가를 내고 이날 하루를 기후정의를 실현하는데 투자했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탄소중립성장위-산업통상자원부-정부종합청사 종합안내실-환경부·국토교통부까지 2.2km 가량을 함께 걸으며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4000개의 다른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환경파괴가 진행되고 있음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탈핵이 기후정의’, ‘양수댐 결사반대’. 우리사회가 직면한 굵직한 환경문제를 지적하는 피켓들 사이로 작고 삐뚤삐뚤한 글씨가 눈에 띄었다. 울산에서 왔다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피켓에는 ‘지구가 아파요’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지구가 아픈 게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는 아이는 아픈 지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플라스틱을 줄여요, 비닐장갑을 줄여요, 캔의 양을 줄여쓰기’. 어른들이 아프게 한 지구를 위해 아이들은 행동할 줄 알았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 한 시간 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미소가 번졌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몸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함께 살기 위해 멈추고자 용기를 낸 하루, 지구를 위해 행동한 하루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4000명의 행동은 4만 명으로, 나아가 4억 명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선이 확산된다는 믿음’은 교회 안팎에서 실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