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바오로 5세 교황은 검사성성 추기경들과의 모임에서 벨라르미노 추기경에게 다음의 사항을 지시하였습니다.
“갈릴레오를 소환한 후, 그가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포기하도록 명령하라. 만일 그가 순명을 거부하면 위원회는 이 내용을 가르치거나 옹호하는 것, 토론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하도록 명할 것이며, 그래도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구속에 처해질 것이다.”
결국 갈릴레오는 다음날인 2월 26일 벨라르미노 추기경 앞에 소환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추기경은 그에게 위원회의 결정 사항을 전해 준 후,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완전히 포기하고 그것을 말이나 글로써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갈릴레오는 그 자리에서 순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후 3월 5일에, 갈릴레오 재판의 결과로서,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공전에 관하여」는 교황청의 금서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에 오르게 됩니다. 그 후 「천구의 공전에 관하여」는 (태양계 모든 행성들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임을 밝힌)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의 여러 서적들과 함께 200여 년 후인 1835년에야 비로소 금서에서 풀리게 됩니다. 결국 갈릴레오는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과 성경에 대한 가톨릭의 태도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옴으로써, 지동설이 이단으로 규정되고 가톨릭이 더욱 보수적이 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