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속한 본당은 협력사목 신부님께서 민족화해분과 지도신부님으로 계십니다. 최근 회합 때 지도신부님께서 “ME와 민족화해분과의 공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비폭력 대화’의 사용입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ME는 잘 아시다시피 메리지 엔카운터(Marriage Encounter)라고 하는 부부일치 운동의 머리말을 딴 것입니다. 혼인한 부부가 대화를 통해 더욱 깊고 친밀한 부부관계로 성장하며 하느님의 계획대로 사랑의 일치를 이뤄 기쁨이 넘치는 혼인생활을 누리게 하는 활동입니다. 결국 올바른 부부관계는 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지도신부님 자신도 비폭력 대화 수준을 측정해 봤더니 폭력성 비율이 매우 높았더라는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저희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말합니다만 그 내용이나 방식이 자신도 모르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크다’는 모로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말이 입힌 상처’로 인해 개별적인 인간관계가 파탄 난 사례를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사람은 상처를 준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훼방을 놓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인기 드라마 ‘추노’에서 배우 성동일이 연기했던 천지호처럼 말이죠. 천지호는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 게 천지호야. 알어!”라고 일갈합니다.
고민하다 보니 생각의 지점이 개인 간 관계에서 국가 간 관계로 옮겨집니다. 국가 간 대화에는 폭력적인 대화가 많을까요? 비폭력적인 대화가 많을까요? 아무래도 폭력적인 대화가 많은 것 같습니다. 통상 국가 간에는 자국의 이익 관철을 위해 무력과 외교라는 두 축이 작동됩니다. 그리고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화를 통한 외교의 방식이 자주 활용됩니다. 다만 그 외교의 과정에서 상대를 압박하거나 견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위 ‘거친’ 표현들이 자주 활용됩니다.
물론 우리가 좋아하는 성경 시편만 보더라도 ‘분노’라는 명사가 25번, ‘분노하다’라는 동사가 11번 쓰였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하느님이 유다인들에게 분노하셨거나, 유다인들에게 해를 끼친 이들에게 분노하셨을 때입니다.
그러나 분노하는 구약의 하느님보다는 사랑으로 대하시는 신약의 예수님께 우리 마음이 더 평온을 느끼는 것처럼 국가 간에도 비폭력 대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