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공존하는 아시아만의 토착화된 복음화 필요성 재확인
겸손과 자기 비움 정신 토대로
다양한 종교·문화 서로 존중하고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상반된 것들에 대한 긴장 다뤄야
일 중심 아닌 사람 중심 공동체로
교회 밖으로 확장한 시노달리타스
관행에서 벗어난 사목적 우선순위
아시아교회 나아갈 새로운 길 제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에서 논의한 결과를 모은 「방콕 문서」(Bangkok Document)는 아시아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방콕 문서」 마지막 두 개 장인 제4장 ‘재능 나누기’(Offering Our Gifts)와 제5장 ‘새로운 길 따르기’(Following New Pathways)에서 아시아교회 신앙인들이 갖춰야 하는 덕목과 자세 그리고 새 과제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아시아의 문화와 영성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공동체가 알아야 하는 아시아의 문화와 영성을 이야기하면서 제일 먼저 마태오복음 2장 11절을 인용하고 있다.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 낮은 곳으로 찾아가는 마태오복음의 묘사에서 방문객이 타인의 집을 방문할 때 존중과 경배의 뜻으로 신발을 벗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시아에서 전형적인 문화다.
자기를 비우듯이 발가벗고 있는 아기 예수님,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기 위해 인류를 포용하는 아기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을 경배하며 발견하는 의미가 있다. 아기 예수님은 사람이 된 하느님이기에 인간도 성스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신성한 선물로 내놓음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바칠 수 있게 이끌어 주신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계 구원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방콕 문서」는 마태오복음에 그려진 동방박사들과 아기 예수님에게서 겸손과 자기 비움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먼저 서술하면서, 교회에서든 세상에서든 아시아교회는 조화 혹은 긴장 속에서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 피부색과 관심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수님의 왕다움’(Jesus’ kingship)은 말구유 안에 놓여진 절대적인 가난으로부터 드러난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예수님의 구원 능력을 인식하고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중심에 모시게 되면, 가난한 이들의 삶은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한 지혜를 갈망하도록 이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형제들」 137항에서 “오늘날 우리는 모두 함께 구원받거나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키워야 합니다. 지구 한편에서 겪는 가난, 타락, 고통은 결국 지구 전체에 타격을 주게 될 문제의 암묵적 온상지가 됩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배울 수 있고, 누구도 무가치하지 않으며 누구도 소모품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주변부에 있는 이들을 우리 안으로 포용할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변부 사람들은 사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중심부에 있는 이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현실의 진상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에 필요한 ‘바라보기’(Looking)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더욱 많은 것을 알려는 욕구에서 나오는 신중한 자세라고 표현했다. 아시아교회가 삶을 흑과 백,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방식 안에서 서로 상반된 것들 사이의 긴장을 다룰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새로운 길 따르기 - 또 다른 길로 돌아가기
「방콕 문서」의 결론은 ‘아시아교회는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방콕 문서」 전체의 모티브가 되고 있는 동방박사들도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마태 2,12) 동방박사들이 각자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가는 데는 ‘별’로 상징되는 하늘의 안내도 있었지만 동시에 사람의 안내도 있었다. 아시아교회의 새로운 길 역시 하늘과 사람의 안내,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대교구에서 FABC 50주년 총회를 마친 아시아교회는 동방박사들처럼 ‘다른 길로’ 각자 자기 교구로 돌아갔다. FABC 50주년 총회는 아시아 각국 교회 앞에 ‘새로운 길’(New Pathways)을 열어 놓았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가 따라야 할 새로운 길 5가지로 ▲외래적 표현에서 토착화된 복음 선포로(From foreign expressions to inculturated proclamation of the gospel) ▲기초 교회 공동체에서 기초 사람 공동체로(From basic ecclesial communities(BECs) to basic human communities(BHCs) ▲대화에서 시노달리타스로(From dialogue to synodality) ▲선언에서 스토리 텔링으로(From proclamation to story telling) ▲관행에서 새로운 사목적 우선순위로(From the beaten track to new pastoral priorities)를 제시했다.
FABC 50주년 총회는 토착화된 복음화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토착화(Inculturation)는 하느님이 인간의 형상을 한 예수님으로 내려와 인간을 구원하신 신비에 근거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가 필리피서 2장 7-8절에서 말한 대로 육화(Incarnation)의 신비는 곧 자기 비움과 낮아짐이다. 신앙과 문화가 대화하려면 그 문화 안으로 들어가는 토착화는 본질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기초 교회 공동체에서 기초 사람 공동체로 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는 교회 일에만 관심을 갖는 공동체는 참다운 시노달리타스를 구현할 수 없으며, 사람에 기초한 공동체를 건설할 때 진실한 선교 사명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에서 시노달리타스’는 시노달리타스가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대화와 가톨릭교회 밖에서의 대화까지 포함한다는 면에서 대화보다 포괄적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특히 여성 및 청년과 대화하고 가톨릭교회 밖에서는 이웃 그리스도교 신자들, 가난한 이웃들,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과 대화하는 것이 시노달리타스다.
예수님이 초대 교회에서 하느님의 통치를 선포했듯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시아교회를 성장시키고 소통과 공동체를 강화하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FABC 50주년 총회에 참석한 주교단은 의견을 모았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가 걸어갈, 마지막 새로운 길로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목적 우선순위를 제시한다. 아시아에 산재해 있는 갈등과 충돌의 중재, 사회적 약자들 특히,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중독자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복리 증진, 디지털 기술의 적절한 활용, 이주민과 난민, 인신매매 피해자 등과 관계된 정부 및 시민단체와의 연대, 생태계 보전 등이다.
「방콕 문서」는 세속주의를 거부하고, 보다 인간적인 세상, 정의와 평화 사랑의 시민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선의를 지닌 모든 이들과 힘을 합칠 것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