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기도 / 조형진

조형진 요한 세례자,제1대리구 상촌본당
입력일 2023-05-16 수정일 2023-05-18 발행일 2023-05-21 제 3344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를 잘하기를 원했지만 어떻게 해야 기도를 잘할 수 있는지, 또 기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기도를 마치 좀 더 높은 경지로 오르기 위한 ‘무림인의 무공’, 혹은 원하는 것을 얻는 수단 정도로 생각했었다. 내가 했던 최초의 간절한 기도는 로봇 장난감을 얻기 위해 산타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였던 것 같다.

내 안의 주님을 처음 의식하게 된 건 군대에서였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힘든 훈련을 받으니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었고, 당장이라도 탈출해 부모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힘든 훈련 주간을 보낸 뒤 종교활동으로 성당에 가게 되었는데, 훈련소의 낯선 성당이 마치 집에 돌아온 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날의 성가는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쏙쏙 들어왔고, 전우들과 울면서 목이 터져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행군이나 힘든 훈련 중에는 잊었던 주님의 기도를 되뇌었다. 하지만 자대 배치 후 군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예수님과는 멀어졌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내게 기회를 주셨던 걸까. 복학 후 냉담 중이었던 나는 청년회 가입 권유를 받았다. 인원이 부족한 청년회에서는 모두가 전례 봉사를 해야 했고, 그렇게 성가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가대 활동은 훈련병 때 간절히 성가를 불렀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특히 모든 지식과 큰 믿음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1코린 13) 가사가 크게 울림을 주었다.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였을까. 지금도 코린토1서 13장을 읽으면 눈물이 난다.

친교가 주를 이뤘던 나의 영성 생활은 피정과 함께 달라졌다. 평소 사색을 즐기는 터라 조용히 침잠하여 보내는 시간이 좋았고, 청년들과 함께하는 피정이 여행 같고 즐거웠다.

하지만 내 안에는 수많은 결심과 진로 계획만이 가득했을 뿐 예수님의 자리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수원교구 어농성지의 음악 피정에서 침묵 속 자유롭게 자연을 거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고요함 속에 홀로 숲을 거니는데 평소와 다르게 작은 새소리, 바람 소리, 눈 밟는 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졌고, 불현듯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모든 것들이 감사했다. 그래서 나는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걸으면서 주님을 찬미했다.

이후 날라리 신자 같던 나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청년회장이 되었고, 부족함을 지식으로 채우려고 발버둥 치던 무렵에 교구 수녀님 추천으로 예수마음 피정의 집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양기승 요한 신부님을 통해 ‘기도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라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배웠다. 그리고 성체조배의 중요함과 기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언제 어디서나 짧은 기도로 주님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위안이 됐고, 형식적으로 바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을 만나고 싶다는 열렬한 형태의 기도를 드리게 됐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신앙생활은 굴곡이 많지만, 이 여정의 끝에 주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조형진 요한 세례자,제1대리구 상촌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