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21) 베르테르를 부르는 언론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입력일 2023-05-23 수정일 2023-05-23 발행일 2023-05-28 제 334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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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반복적 보도는 이제 그만
희극인 박지선씨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우연히 연예인 한 분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참 대화 끝에 저는 연예인만의 특별한 자살 이유가 있는지, 일반인과 다른 연예인만의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지,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그분께 질문드렸습니다.

그분은 제 질문에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연예인도 보통 사람과 똑같아요. 특별히 연예인이어서 자살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로 힘든 거예요.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자살의 이유가 될까요?”라고 반문하셨습니다. 순간 제 생각이 아주 짧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뒤부터는 연예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위의 지지와 일상적인 삶이 잘 유지되어야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연예인 활동과 평범한 삶이 균형을 이루면서 연예인도 일상에서 가족·친구들과의 소소한 만남, 학습하고 쉴 수 있는 시간, 연예인 활동과 더불어 언제일지 모를 비연예인 시기에 대한 준비가 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연예기획사가 소속 연예인과 합리적 계약을 맺고 더 지원해야 할 내용이기도 합니다. 대중 역시 연예인에게 공인(公人)이라 칭하며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기보다는 연예인을 직업예술인으로 이해하고 절제된 관심을 보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연예인 자신도 ‘연예인의 삶’ 또는 ‘연예인 역할수행’이 자기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삶이 몽땅 ‘연예인’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면, 훗날 자신의 전부와 같은 ‘연예인의 삶’이 가능하지 않을 때, 이를 받쳐줄 현실적인 삶, 대안적인 삶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심한 정체성 혼란과 위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연예인은 가변성이 큰 직업이므로 언제든 전환과 이동이 자유로울 수 있게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연예인 자살과 관련해서 최근 다시 베르테르 효과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엄밀하게 보면, 연예인의 자살과 이를 모방한 자살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연예인의 자살보다 연예인 자살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인터넷 사이트, SNS 포함)가 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잠재된 자살실행력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언론은 연예인의 죽음과 주변의 충격을 반복 보도하면서 ‘OOO씨의 죽음 이후 벌써 몇 명 째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베르테르 효과를 조장하거나 베르테르 효과를 확인하려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실제로 자살 위험성을 가진 사람들은 연예인 자살 보도를 접하면 일반인들보다 더 공감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누구의 영향을 받아 자살했다거나 누구 따라서 자살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오히려 평소 구체적인 자살 생각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살 충동성을 일으키는 일종의 암시 효과를 준다는 측면에서 언론보도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언론매체는 자신들의 상업적 이득을 위해 연예인의 죽음을 상서롭지 못한 방향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밀하고 자극적인 자살 보도를 자제하고 자살 위험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끄는 정보나 전문적인 도움 제공기관을 안내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