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끊임없는 자기 신뢰와의 싸움
예전에 어떤 자매가 아기를 낳고는 불안증으로 한강에서 아기와 함께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아기를 빼앗아 갈 것 같은 불안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아파트 창문에 창살까지 만들어주고 잠금장치를 여러 개 달아주어도 불안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자매는 아기를 안고 택시를 타고 친정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갓난아기를 안고 돌아다니면 어떻게 하느냐며 딸을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는 아기를 안고 한강으로 뛰어내린 것입니다. 아기는 죽고 아기 엄마는 구조되었습니다.
왜 불안이 우리를 괴롭힐까요? 불안은 생존을 위해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고 하셨습니다. 아기 엄마는 자기 힘으로 아기를 지키려 하였습니다. 결국 자기를 믿는 마음이 아기를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생존의 문제는 우리에게 달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아이들처럼 자신보다 부모에게 자기 생존을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훨씬 안전해집니다. 이처럼 의탁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기도의 큰 목적 중 하나입니다. 교리서는 “구약성경에서 기도가 계시된 것은 특히 우리의 성조 아브라함부터이다”(256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믿음의 시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2572) 그리고 기꺼이 하느님의 청에 응답함으로써 당신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실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회복합니다. 올바른 지향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교만만을 키울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나에게 해로운 것만을 청하다 끝이 납니다. 기도는 내 안의 의탁하지 못하는 교만한 성향을 정화하는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나를 믿는 마음이 교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일만 생각”(마태 16,23)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어떤 때는 우리가 청하는 것을 들어주시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아끼는 것을 빼앗으면서까지 우리를 당신께만 의탁하는 존재로 만들려 하십니다. 기도는 진정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꾸준히 신뢰하는 것으로, 약속된 승리를 확신하기 위하여 겪어야 하는 신앙의 싸움”(2592)입니다. 야곱은 에사우를 만나러 갈 때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축복을 청합니다. 밤새 천사와 씨름합니다. 이 이야기는 기도의 상징으로 “신앙의 싸움과 끈기의 승리”(2573)가 기도의 목적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야곱은 에사우를 만날 힘을 얻고 그에게 나아갑니다. 하느님이 무서워 나무 뒤로 숨던 아담과 대조됩니다. 기도는 나를 이기려는 노력입니다. 나를 이기지 못하면 불안과 두려움에 이웃과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은 자기를 믿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자신을 믿지 않아야 어린이처럼 부모에게 의탁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믿는 마음을 교만이라 합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털끝만치도 자기를 믿지 말라”(「영혼의 성」 제2궁방, 9항)고 권고합니다. 모세를 믿고 이집트에서 탈출했다면 더는 파라오 시절을 그리워해서는 안 됩니다. 교리서는 이 끊임없는 자기 신뢰와의 싸움이 기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완덕의 길은 십자가를 거쳐 가는 길이다.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다.”(2015)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