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년 이후 한국 남자들은 가장의 권위가 사라진 지 오래다. 밥벌이도 시원찮고, 소통도 여의찮고, ‘꼰대’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가끔 허세도 부리며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
김정대 신부(프란치스코·예수회 마지스 협력사제)는 “왜 한국 남자들은 그렇게 사서 고생하고 불행을 자초하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런 거 좀 내려놓고 편하게 살자”고 말한다.
도발적인 제목이 시선을 끄는 책에는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말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상을 재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간의 부정적 측면을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남성상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즉 허위와 가식으로 둘러싸인, 만들어진 남성성에서 해방돼 홀가분하게 조금 더 ‘나’로 살자는 것이다.
김 신부는 호주 멜버른에서 ‘남성들의 관계적 영성’을 주제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남성 연구는 한 가지 고민에서 비롯됐다.
“오랫동안 노동 현장에서 위기 상황에 내몰린 노동자들을 동반했는데, 위기 상황에서 남성들은 더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거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 학문적 성찰의 시작이었습니다.”
공부 단계에서 김 신부는 한국 문화의 폭력성을 보게 됐다. 한국 남자들이 관계적이지 못한 원인과 위기 상황에 취약한 이유를 그 폭력적인 문화와 제도에서 찾았다. 또 이것이 한국 남자 양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관심을 두게 됐다. 논문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이번 책은 논문을 바탕으로 「가톨릭평론」에 연재한 글을 조금 더 확장한 것이다.
김 신부는 “우리 사회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조금 더 경직된 형태로 성역할을 정한 것 아닌가 싶다”라며 “그 원인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유교 문화의 가부장 문화, 군대 문화와 같은 권위주의에 의해 더 강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 사제이자 같은 남성으로서, 한국 남자가 겪는 외로움과 무력감은 비단 경제 위기나 사회적 지위의 상실 같은 외적 이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오히려 기존에 틀지어진 남성성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신부는 남자들도 때에 따라 통곡할 수 있고 앓는 소리도 할 수 있음을 인정하라고 한다. 이젠 가부장제 아래 얹어진 짐을 덜고 자신의 약함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중년 남자들이 가져야 할 리더십으로 ‘섬기는 리더십’을 제시한 김 신부는 “리더십이란 기술이 아니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 성숙에 정서적 성숙이 중요하듯이 리더십 성장에도 감정을 통한 자기 인식이 중요합니다.”
감성을 개발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으로 김 신부는 ▲의식 성찰 ▲스토리텔링 ▲즉흥극 ▲요리교실 ▲목공교실 등을 권했다.
“인생은 전쟁이 아닙니다. 후반기는 인생이라는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춤을 출 때입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줄 용기만 있다면 세월의 가락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나만의 춤을 추게 됩니다.”
김 신부는 “경직된 사회 구조에 맞춰 살며 부자연스러웠던 것을 벗어버리고, 이제 ‘나’만의 삶을 찾아 인간 성장을 하는 데에 이 책이 도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