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는 ‘파스카 축제’… 엄숙해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당이 장례식장 분위기인 이유는
인간 죄책감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
엄숙한 기도만 강요하면 웃음 사라져
웃음은 그리스도교에 낯선 것일까?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극단적으로 묘사된, 뒤틀린 종교적 근엄함이 그리스도교와 눈꼽만큼이라도 닮은 점이 있을까? 종종 우리 가톨릭교회는 지나친 거룩함과 근엄함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를 악덕이라고 하기까지는 어려워도 사실 우리 신앙생활은 너그러움과 여유를 지나치게 소홀히 여김으로써 유머와 웃음의 소중함과 기여를 허술히 다루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유머, 기쁨과 웃음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사실 성경 속에서 유머와 웃음을 묘사하고 언급한 곳은 거의 없다. 예수가 웃었다는 기록은 아예 없다. 복음은 말 그대로 ‘복음’이고 기쁜 소식을 접하는 신앙인들에게 복음은 그 자체로 기쁨과 희망, 한없는 환희의 원천이지만 정작 성경에는 유머로서의 웃음 자체를 언급한 곳이 없다. 예수님이 웃었다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생전 웃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5년 이탈리아 튜린대학교에서 열린 ‘고대 그리스도교의 웃음과 코미디’(Laughter and Comedy in Ancient Christianity)라는 신학 세미나에서 이탈리아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했다. 만일 예수님이 지나치게 엄격한 분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고급 유머
오히려 예수는 비유와 은유를 통한 고급 유머를 탁월하게 구사한 분으로 여겨진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의 지배하에서 사람들은 억압과 고통을 당했다. 권력자를 비판하고 억압받는 백성들을 위로하던 예수는 어쩌면 탁월한 풍자와 해학의 어휘를 구사했다. 이는 조선시대 양반의 횡포에 대한 저항으로 탈춤 등의 서민 문화를 통해 풍자와 해학을 솜씨 있게 발휘하고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했던 한국의 전통과도 닮아있다.
하지만 예수의 유머는 비웃음이나 광대형, 익살이나 조롱, 블랙유머나 오해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상대를 조롱하거나 자의적으로 비난하는 대신, 부정적인 사고나 절망과 좌절, 파괴적인 사고를 드러내는 대신,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변화를 촉구한다.
예수는 당시의 사회제도나 특정 집단의 불합리와 이기적인 공명심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던져주고 인격적인 변화를 유도하는데 목적이 있다. 직접적인 비난보다는 일상 삶에 관련된 다양한 비유와 은유를 통해 그들이 비난을 성찰하고 수용할 마음을 갖도록 권고한다.
성경의 해학
사실 성경에서는 약간의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예수의 풍요로운 유머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이 이러한 예수의 풍자와 해학의 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타성과 선입견이다. 십자가의 비극, 수난과 죽음에 매몰돼 예수의 쾌활함과 익살스러움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고통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당신이 사랑하시는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즐겁고 유쾌하게 살았던 분이다. 사순 시기, 십자가의 수난을 묵상하고 우울해 하지만 이는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시기임을 잊어서는 안 되며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나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성경과 예수의 가르침 속에서 웃음과 유머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 신앙생활 역시 종종 자조적으로 성찰하듯이 침울함과 죄의식에서 벗어나 기쁨과 즐거움으로 생동감을 얻을 수 있다.
유머와 웃음이 신앙에 주는 기여
실제로 사목자들과 신학자들은 유머와 웃음이 신앙생활에 주는 긍정적인 요소를 강조한다.
영성상담가인 홍성남 신부(마태오, 가톨릭심리영성상담소 소장)는 “늘 성당이 장례식장 분위기인 이유”는 “신학자들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멀리하고 기도만 하라고 하면서 신앙인들에게서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오신 분이지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전례학자인 안봉환 신부(스테파노,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는 “신자들에게 미사는 파스카 축제라기보다는 제사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제사는 거룩함과 장엄함이 지배적 분위기이므로 기쁨과 친교의 요소가 부족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사 전례가 기쁘게 거행되려면 공동체의 친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정희완 신부(요한 사도, 가톨릭 문화와 신학연구소)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쁨과 즐거움을 강조한다. 정 신부는 “엄숙함과 경건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핵심은 기쁨과 즐거움”이고 “신학적으로는 신앙생활에서 은총과 죄의식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교회가 인간의 죄와 회개, 속죄를 지나치게 강조해왔고, 교회 문화 자체도 위계적이고 경직됨에 따라서 유머나 웃음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에 대해서 소홀히 여겼다는 지적이다.
오랫동안 웃음 치료를 해온 이미숙 수녀(아가타,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는 “하느님 자신이 위트가 넘치시는 분”이라며 “웃음은 하느님의 엄청난 선물”이라고 말했다.
유머 감각은 성화의 조건
특유의 위트와 유머러스한 언행으로 많은 이들의 친근한 사랑을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예 성덕의 조건으로 유머 감각을 꼽는다.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122항)에서 교황은 오늘날 성덕의 징표를 인내와 온유함, 대범함과 열정, 공동체성 그리고 지속적 기도와 함께 기쁨과 유머 감각을 꼽았다.
이 징표들은 “성화의 완벽한 모범은 아니지만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현”(111항)이다. 구체적으로, “성인성녀들은 소심함과 시무룩함, 신랄함, 우울감, 따분한 표정에서 벗어나 항상 기뻐했으며 유머 감각이 풍부했다”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 안의 기쁨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심지어 사제들에 대해서 “유머감각이 없는 사제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유머 감각은 그야말로 거룩함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이 교황의 가르침이다.
무엇보다도 유머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고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나온다. ‘신바람 신앙’을 설파한 고(故) 차동엽 신부(노르베르토)는 “‘의무’ 신앙이 아니라 ‘은총’에 바탕을 둔 즐거운, ‘신바람’ 신앙으로 우리의 신앙이 바뀌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사목자들은 책을 뒤지지 말고 신자들,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얼마나 풍요로운 은총을 입고 있는지 깨닫게 되면, 신앙생활은 ‘복음의 기쁨’으로 넘쳐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유머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끊임없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