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제 겨우 인생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남아 연부역강(年富力强, 연륜도 풍부하고 근력도 좋음)한데, 노인 같은 말씀을 하다니요. 요즘 기준 나이에 걸맞게 젊은 기운으로 임해보길 권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5금(禁) 5권(勸)보다 십계명만 잘 지켜도 노년이 행복할 듯합니다.”, “예비 노인도 좋지만 요즘은 ‘영 시니어’라고 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활동에 ‘액티브 시니어’라고도 하지요.”
필자가 며칠 전 가톨릭언론인 단톡방에 짤막한 ‘노년의 경구’를 올렸더니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그 경구는 민속학의 대가 고(故) 김열규 교수의 ‘5금 5권’(「노년의 즐거움」 참조)이었다. ‘잔소리, 노기, 기죽는 소리, 노탐, 과거에 연연’을 멀리하는 가운데 ‘차분하라, 관대하라, 소식하라, 사색하라, 움직여라’는 권고였다.
무엇보다 노인복지법상 노인의 기준인 만 65세까지 한참 먼 후배를 아끼는 선배들의 마음이 묻어 있었다. 다음으로 그들은 노인, 노년이란 말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기야 ‘100세 시대’에 노화를 냉큼 인정하는 것은 썩 내키지 않을 터다. 그런데 갓 정년퇴직한 필자가 노인 또는 노년을 언급하면 애늙은이 같을까. 굳이 예비 노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대 얘기는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침 오늘은 제3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이다. 지난 2021년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정한 이 날에는 교회가 언제나 노인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교황은 노인들의 소명, 즉 ‘뿌리 지키기, 젊은이들에게 신앙 전수하기, 작은 이들 돌보기’를 일깨워 주었다. 올해 이 날은 8월 1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와 잇닿아 있다. 교황은 노인과 조부모, 젊은이 두 세대가 삶과 신앙의 친교, 상호 선물과 감사, 희망과 애덕의 증언을 나눈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도 초고령 사회(전체 인구에서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초과)까지는 3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교회는 이미 2년 전 초고령 교회(65세 이상 신자 비율 23%)에 접어들었다. 그러니 ‘시니어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하는 노인사목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른바 ‘지공거사’(地空居士·지하철 무임승차 노인)를 떠올리게 하는 노년 생활은 어떻게 하면 슬기로울 수 있을까. 이 시대의 대표적 영성가인 안셀름 그륀 신부는 잘 늙으려면 몇 가지 덕이 필요하다고 봤다. 평정, 인내, 온유, 자유, 감사, 사랑이라는 덕이 그것이다.(「황혼의 미학」 참조) 우선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부터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필자는 요즘 맨발 걷기에 푹 빠져 지낸다. 동네 산속에서 한 시간 가까이 걷다 보면 몸 상태가 좋아지고, 흙길과 하나 되는 느낌이다. ‘기적의 치유법’으로 통한 것일까. 산에서 만나는 사람 절반 가까이가 맨발족이다. 또한 자신의 특기를 찾아 루틴으로 삼으면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읽고 쓰고 걷는 ‘삼락’(三樂)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따삐빠! 따삐빠!” 전 MBC PD였던 김민식 작가의 제안은 흥미롭다. 시시콜콜 따지지 말고, 사소한 일에 삐지지 말며, 친구 모임에 빠지지 말자는 뜻이다. ‘따삐빠’ 하다 보면 자기만 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잠깐 병원 생활을 했을 때 일이다. “○○○님, 이어폰 끼고 들어주세요.” 60대 후반 환자에게 젊은 간호사가 한 말이다. 그는 5인실 병상에서 휴대폰으로 볼륨을 키운 채 유튜브를 시청하다 딱 걸렸다. 이런 민폐는 지하철에서도 종종 보는 볼썽사나운 장면이다. 풍부한 경험을 전수하고, 공중도덕을 지키며 ‘꼰대’ 소리 듣지 않는 지혜로운 노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