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 베드로 대성당 외벽 김대건 성인상 조각하는 한진섭 작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3-07-18 수정일 2023-07-18 발행일 2023-07-23 제 3353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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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영성과 한국교회 저력에 긍지 느꼈으면” 

현재 형상 위주 작업 마치고
성인의 정신 담는 과정 남아
9월 초 대성당으로 운반 예정
한국교회 위상 드러내는 일
자부심 갖고 기도해 주시길

한진섭 작가가 자택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외벽에 세워질 김대건 성인상 모델을 놓고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 외벽에 성 김대건 성인상이 들어선다. 동양 성인의 성상이 세워지는 것은 성 베드로 대성당 역사상 처음으로 시스티나성당 천장화와 벽화를 보고 나와 만나는 외부 벽감(壁龕, niche)에 설치될 예정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 성인상이 세워지는 것은 성인의 영성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한국교회 위상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2020년 11월 29일-2021년 11월 27일)의 뜻을 기억하기 위해 16개 교구가 함께 비용을 지원하고 동상 제작에 참여했다. 9월 16일,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를 비롯한 한국 주교단과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축복식과 특별 미사가 봉헌된다.

성인상 제작을 맡아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에서 작업하던 한진섭(요셉) 조각가가 성상 마무리를 앞두고 일시 귀국했다. 분당 자택에서 그를 만나 제작 경과를 들었다.

2023년 1월 9일은 한 작가에게 기념비적인 날이라 할 수 있다. 이날 김대건 성인상을 조각할 대리석 원석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성상 건립 조건 중 하나가 ‘흰색 카라라 대리석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북서부 카라라(Carara) 지역은 고대 로마 시절부터 양질의 대리석 산지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다비드’ 상이 이곳 돌로 조각됐다. 5개월 동안 카라라 대리석을 뒤졌던 그는 돌이 결정된 날 작업장이 있는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 두오모본당 주임사제 주례로 돌 축복식을 거행했다.

“좋은 돌은 사실적 형태 작업을 하기 위해 문양이 적어야 하고, 금(crack)도 없어야 합니다. 또 섬세하게 표현하려면 입자도 작아야 하죠. 이 모든 조건을 갖춘 40톤 규모의 돌을 찾아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성상 제작에 있어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제까지 형상 위주 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성인의 정신과 혼을 담는 손맛을 불어넣어 줘야 하고, 기술적인 면에서는 현장 답사를 통해 바티칸 관계자들과 구체적인 설치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 설치 과정에서 광장 벽이 손상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 작가는 “8월 말까지 작업을 종료하고 9월 초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운반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각에 담길 성인은 도포를 입고 두 팔을 벌려 서 있다. 25세 나이의 젊음과 깊은 신앙심, 담대함이 깃든 모습이다. 한 작가는 “성인의 담대하고 젊고 온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살려야 하지만,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 얼굴 인상과 손”이라고 설명하고 “이를 위해 옷자락의 세밀한 부분 등은 단순화시켰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한진섭 작가. Riccardo Dalle Luche 제공

‘내가 어떻게 김대건 성인상을 만들게 됐을까?’ 조각 작업 내내 한 작가의 뇌리에 남았던 질문이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힌 것이 단초였지만, 그는 “600년 전부터 비어있던 성상이 놓일 자리는 아마도 김대건 성인상이 놓이기 위해 준비된 것이었고, 유 추기경님 제안도 제가 작업하게 된 것도 이미 준비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상 제작자를 찾는 조건은 이탈리아에서 작업이 가능해야 하고, 가톨릭 신자여야 하고, 돌 조각 작업 전문가라야 했습니다. 45년 동안 돌 조각을 했고 이탈리아 카라라서 유학한 경력이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이 준비시킨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의 기존 조각들은 사실적이라기보다 곡선의 부드러움이 드러나는 구상성이 있는 작품이었다. “수년 전부터 대전교구청 김대건 신부상을 비롯한 정하상 성인상 등 사실적인 인물상을 집중적으로 조각한 것은 이번 김대건 성인상 제작을 위해 하느님이 훈련시킨 과정 같다”고 한 작가는 덧붙였다.

“성인에 관해 공부하며 젊은 나이에도 하느님만을 향한 뚝심과 용기가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그는 “김대건 신부님을 떠올릴 때면 그 험난한 여정을 걸어간 모습이 떠올라 울컥하게 된다”고 했다.

“‘겸손’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또 성인을 알고 나서 ‘닮아야겠다’ 다짐합니다. 설치될 때까지 안심할 수 없지만, ‘성인이 도와주실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맡기자’고 기도하게 됩니다. 한국교회의 저력과 한국의 국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신자분들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