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라는 직업조차 낯선 땅에서 신앙의 가치를 심다
인구 대비 신자 수 0.335%인 일본
사무 업무에서 성당 관리·청소까지
신부들이 도맡아 하는 경우 많아
가톨릭에 대한 인식 미비해도
신자 아닌 아이들 위한 종교교육
신앙의 가치 심어주는 중요한 선교
“현재 일본교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
20~30년 후 한국교회가 겪을 수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 나라에서 한국 사제들은 어떤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을까. 대구대교구가 일본에 파견한 선교사제, 나가사키대교구의 김봄(요셉)·남시진(스테파노) 신부, 후쿠오카교구의 이한웅(요한 사도)·정원철(마르첼리노 아파메아) 신부의 선교 현장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제대를 차리는 신부님
후쿠오카교구 다이묘마치주교좌본당 보좌를 맡고 있는 정원철 신부는 매주 토요일 오후 바다를 향한다. 후쿠오카에서 약 2㎞가량 떨어진 섬, 노코노시마의 공소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서다.
돌아오는 배 시간도 정해져 있고 본당 보좌 소임을 하면서 공소를 찾아야 하기에 공소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가량이다. 미사 집전만하고 오는 것이라면 그리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정 신부는 미사 집전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공소에 도착하자마자 정 신부는 공소회장과 한 주간 공소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사목에 필요한 사안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최근에는 낡은 공소를 보수하기 위한 여러 작업들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공소회장과 이야기를 마친 정 신부는 이제 제대와 제의실을 분주하게 오갔다. 제대를 차리고 미사를 준비하고, 또 미사를 마치고 제대를 정리하는 것도 정 신부의 몫이었다.
한국은 제대 봉사자가 잘 조직돼 있지만, 후쿠오카교구는 이한웅 신부가 제대봉사자회를 만들기까지 주교좌본당에도 제대봉사자가 없었다. 제대 차리는 것만이 아니다. 신자 수가 적은 일본교회에서는 사무 업무는 물론이고 제의나 제구 관리, 성당 청소·관리 등 성당의 여러 일을 신부가 도맡는 일이 많다.
신자들을 돌보는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잡다한 일을 다 하려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정 신부는 “저희 일은 봉사”라 답했다. ‘잡무’라고 불릴 법한 일조차도 정 신부에게는 하느님을 섬기고, 신자들을 섬기는 봉사였다.
정 신부는 그 바쁜 시간 중에도 신자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신자들을 만나려 노력했다. 정 신부에게 공소 방문은 ‘업무’가 아니라 신자들을 만나는 ‘선교’이기 때문이다. 공소 신자인 사카모토 사쓰코(마리아·75)씨는 “정 신부님은 신자들을 굉장히 친밀하게 대해주시는 분”이라면서 “강론도 저희 눈높이에서 쉽게 풀이해 주셔서 매주 토요일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 ‘신부님’이라 부르는 이가 없어도
“원장 선생님! 다음 이야기도 보고 싶어요! 너무 짧아요!”
후쿠오카교구 가시마가톨릭유치원, 종교교육을 마칠 시간이 되자 어린이들이 ‘원장 선생님’ 이한웅 신부에게 외쳤다. 아이들의 외침에 이 신부는 “그럼 지난번에 배운 걸 조금만 더 할까?”라며 아이들을 달랬다. 매주 수요일 유치원 어린이들을 위한 종교교육시간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다.
이 신부는 영상 자료를 활용해 성경 이야기를 전하고, 성경 속 이야기를 어린이들의 생활에 접목시켜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간다. 덕분에 어린이들은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예수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성경 지식이 상당한 편이다.
그런데 이 신부를 ‘신부님’이라 부르는 어린이는 없었다. 어린이들 중에 신자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인구 대비 신자 수가 0.335%인 일본. 그러다보니 선교사제들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신자보다도 비신자를 더 많이 만난다. 이 신부는 “직업을 ‘신부’라 소개해도,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일 정도”라며 가톨릭에 대한 인식이 미비한 일본 사람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일본인들의 삶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본 토착신앙인 신토(神道)와 불교행사가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교를 믿는 일은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과의 일상과 단절이 생기는 일이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퍼진 물질주의는 선교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 일본에서 선교란
낯선 언어와 문화만이 아니라 선교에도 큰 벽이 있는 일본선교는 선교사제들에게 큰 도전이었다. 선교사제들은 이런 일본에서 ‘선교’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이한웅 신부는 “신자가 아닌 어린이들이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명과 인격의 소중함 등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헛된 수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물론 세례를 받는 것이 가장 좋지만, 세례를 받지 않더라고 여기서 배운 신앙의 가치를 사회에 나가서 실천한다면, 신앙의 가치를 심어줄 수 있다면 그것도 중요한 선교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정원철 신부는 “일본 선교를 간다고 하니 몇몇 분들이 선교의 뿌리가 끊어진 곳에 왜 선교를 하러 가느냐고 물으셨지만, 뿌리가 끊어졌다고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목자를 필요로 하는 양들이 참 많다고, 그래서 주님께서 불러주셨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제 한 몸을 불살라서 이 일본이라는 곳에 선교의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불을 지르고 싶다”고 전했다.
그리고 선교사제들은 일본교회를 통해 또한 한국교회의 미래를 바라보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기에 교회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 곳.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찾지 않는 곳. 성소자가 줄어 사제들이 부족한 곳. 이는 이미 일본교회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앞으로 한국교회에 닥칠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가사키대교구 덴진본당 주임을 맡고 있는 김봄 신부는 “일본사회가 20~30년 뒤의 한국사회의 모습이라는 이야기들을 하시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일본교회에서 겪는 일들이 20~30년 후 한국교회가 겪게 될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물론 한국교회와 일본교회의 생활양식이나 특징은 서로 다르지만 지금의 일본교회를 통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