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한글학교를 하면서, 학교로 쓸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마을의 한 영국 초등학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역신문에서 봤다며 필요하면 주말에 학교를 임대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다. 학교 건물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문제는 임대료였다. 보통의 경우 학교 임대는 교실 한 개당 한 시간에 2~3만 원이 든다. 우리는 오후 한나절 교실 10개가 필요했고, 임대료는 얼추 잡아도 하루에 100만 원에 육박할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학교이고 예산이 매우 부족하니 그 점을 감안해 달라고 아쉬운 소리부터 했다. 탈북민 가정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는 이야기도 했다. 온정적인 배려를 기대했던 것 같다.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혹시 임대료로 아이들 한 명당 하루에 1파운드(약 1600원)를 받아도 될까요?” 당시 우리 학교 학생은 70명이었고, 그러면 하루에 70파운드(약 11만 원)면 족했다. 믿기지 않았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혹시 자선사업으로 하시는 건가요?” 그 학교는 영국 교회 부설학교였다.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일주일에 70파운드면 우리 학교 일주일치 전기료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도 도움이 되는 걸요. 그리고 학교 건물을 지역공동체에서 함께 쓴다는 것은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됩니다. 이건 우리에게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는 학교에 창고가 마땅치 않다고 미안해하며, 필요하면 운동장에 우리 학교용 간이창고를 지어도 된다고까지 했다.
그에게서는 이민자의 토요학교를 ‘도와준다’는 태도가 전혀 없었다. 그는 학교가 토요일에도 잘 사용돼서 기쁘다며, 오히려 이 일이 그 학교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도울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당신 처지가 딱하니 내가 착한 마음에 도와준다’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니 기쁘다. 당신이 사용해 줘서 내게도 도움이 된다’는 태도에서 나는 우리를 온정적인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하는 것을 느꼈다. 이 학교, ‘크라이스트 처치 스쿨’(그리스도의 교회 학교)의 교훈은 이랬다. ‘Becoming the people God made us to be’(하느님이 만드신 그 사람이 되기). 누군가를 도와 줄 때, 나도 이 마음을 배우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