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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시노달리타스] (24) 한일주교교류모임과 시노달리타스

최영균 시몬 신부,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3-10-24 수정일 2023-10-24 발행일 2023-10-29 제 336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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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역사 극복하고 사랑과 친교 실천 나서
한일 주교 상호이해 필요성에 공감대
동아시아 복음화와 역사적 화해 도모
인권·환경·사목 등 모임 주제 확장
순수한 친교 통해 복음적 가치 추구

한일 양국 주교들이 지난 2014년 11월 10일 경기도 퇴촌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할머니들과 만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시노드 교회의 역사 모델로서 한일주교교류모임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 후계자(주교)들이 베드로의 권위와 형제적 친교 안에 모여 교회의 교리를 정하고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의가 시노드의 기원이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주님 영의 인도 아래 경청하고 나누고 사명을 함께 식별하며, 교회적 삶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시노드의 정신이 신자들 모두에게 확장되어, 교회의 문화와 제도의 수준에서도 구현되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시노드적인 교회의 삶이 지향하는 것은 친교(형제애)와 사명(세상 복음화)에 있다. 이러한 시노드 교회의 두 가지 지향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역사적 사례가 있으니, 그것은 지난 90년대부터 매년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 가며 진행해 온 ‘한일주교교류모임’이다.

1990년대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한일 간 역사 갈등과 국익 우선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였고, 이러한 상황이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였다. 양국의 정치권은 이러한 국가 간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기에 두 나라 사이의 깊은 미움의 감정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故) 이문희(바울로) 대주교와 강우일(베드로) 주교, 고(故) 박석희(이냐시오) 주교 등 몇몇 주교들은 양국의 평화를 위해 교회가 작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였다.

이 주교들은 1996년 2월 16일 일본 도쿄대교구장 하마오 후미오 대주교를 갑작스럽게 방문하였고, 한일 문제 특히 역사적 갈등에 대한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는 도쿄대교구 보좌주교 오카다 다케오 주교가 배석했다. 이미 199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6차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총회에서, 당시 일본 주교협의회 부의장 하마오 후미오 대주교와 한국 주교회의 의장 이문희 대주교가 개인적으로 양국의 평화를 위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기에 한일 주교들의 이 역사적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양국의 역사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역사적 화해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한일주교교류모임을 가능하게 했다. 역사·사회 영역 안에서의 상호이해와 화해가 동북아시아 평화와 복음화를 위한 중요 열쇠라는 것을 한일 주교들은 공감했다.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 각인된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고민은 일본주교단 안에서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고, 자연스럽게 가까운 이웃 지역 교회에 대한 이해와 교류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한일주교교류모임은 매년 양국을 오가며 성사되었고, 서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며 이해의 깊이를 더해 나갔다. 특히 2004년까지 한일 간의 역사적 화해를 목표로 세미나가 교류 모임에서 있었고, 그 결실로 역사 부교재인 교과서를 출간하였다.

사명을 향하여: 세상의 고민을 나누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은 첫 모임부터 교회의 사명, 즉 복음화를 염두에 둔 시노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한일주교교류모임의 최초 과제가 한일 역사의 상호이해와 대안적 교과서였다는 것은 교회의 가치인 평화를 우리 삶의 자리에서 고민한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교회 밖 사람들에게 가톨릭교회가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종교적 부흥이나 종교 내적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 간 갈등의 최전선에 교회가 선 것이다. 교회 밖에서 볼 때 시민사회의 하나인 교회가 국가주의적 이익을 넘어 상당히 구체적으로 역사적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와 학계를 고무시키고 대중들에게 교회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일주교교류모임이 관심을 두는 주제는 확장되었다. 사목적인 주제, 가령 사제 양성의 문제 및 자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사목적 배려의 문제 등이 있었고, 환경문제, 빈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소수자, 외국인 이주자, 난민 등의 사회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물론 주교단의 수준에서 친교를 바탕으로 한 이러한 복음적 실천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일주교교류모임의 힘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복음적 가치가 실천되고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라는 것보다, 시대의 징표 혹은 예언자의 목소리로 간주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그리스도교 신자들뿐 아니라, 정부와 시민사회 등 세속사회에 대해서도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친교의 징검다리가 되어

시노드 교회에서 중요한 또 다른 지향적 가치가 ‘친교’, ‘형제애, 그리고 ‘함께하는 것’으로 계열화되는 것들이다. 시노드 교회에서 사명 혹은 복음화는 어떤 성과와 일을 수행하는 뉘앙스를 지니기도 하지만 ‘친교’ 그 자체도 중요한 목표이다. 일전에 몇몇의 한일 주교님들을 면담한 적이 있다. 생각나는 분은 전 춘천교구장이셨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익(십자가의 요한) 주교님, 그리고 일본에서는 나고야교구장이신 마츠우라 고로 주교님이다. 두 분이 공통된 말씀을 하셨는데, 한일주교교류모임이 잘 이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모임이 어떤 일이나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저 함께 만나서 친교를 나누기 때문에 부담도 없고 즐겁다는 것이었다. 서로 만나 배우고,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 자체가 바로 교회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시노드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엄중하고 진지하게 수행하는 것이 그 목적인 것 같지만, 친교야말로 더욱 본질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일컬어,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마태 11,16-19 참조)라고 생각했다.

시노달리타스는 단순히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에 맞게 교회가 적응하고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장치가 아니다. 시노달리타스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따라 교회의 성원들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는 많은 긴장과 갈등이 존재한다. 국가와 국가, 정부와 시민사회, 다양한 이익집단들에만 이러한 부정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내에도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교구와 교구, 본당 등 각 부분 간에 긴장이 존재한다. 시노달리타스의 한 부분인 한일주교교류모임은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과 친교로 분열된 ‘사이’의 다리를 놓는 작지만, 여운이 남는 실천이었다. 한일 주교들 간의 친교는 이러한 원리가 교회와 세상에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징표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영균 시몬 신부,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