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체험한 ‘평화순례’도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책은 제1부 ‘평화순례, 제2부 ‘평화메시지’로 나뉜다. ‘평화순례’는 이 주교가 중국, 사할린, 북한 순례와 일본 교포사목을 통해 디아스포라처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십자가를 만나고 그 안에서 깨달은 경험을 생동감 있게 전한다. ‘평화메시지’에는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이 주교의 강론, 강연, 인터뷰, 평화 단상이 소개된다.
책은 이 주교가 쓴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중국 동포들과 만난 1989년 중국 여행에서부터 기록은 시작됐다. “민족의 서글픈 역사 탓에 중국 동포들이 너무도 힘들게 사는 것을 직접 보게 됐습니다. 감동이면서도 충격이었죠.” 이 주교는 일본에서 5년 동안 교포사목을 하며 재일 조선인의 차별받는 삶도 직면하고, 사할린에서는 타의로 고향을 떠나 외롭게 사는 고려인 동포들의 아픈 삶까지도 마주했다.
뿔뿔이 흩어진 민족의 암울한 역사를 목격하고 써내려간 이 주교의 기록은 한민족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주교는 과거 북한을 세 차례 방문했다. 평화순례기 중에서도 북한 이야기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억압받으며 가난하고 불행하게 사는 북한 사람들의 현실을 보게 하고, 북한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는 남북관계가 얼어붙고 있는 오늘날, 한반도에 평화라는 훈풍이 불도록 우리를 기도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6·25전쟁 정전 70주년이지만, 여전히 평화가 위협받는 시대다. “제가 평양교구 소속으로 신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신부가 되면 평양에서 사목할 줄 알았는데, 은퇴할 때가 돼도 통일이 오지 않았네요. 평화라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 이룰 수가 없고 결국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 주교는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라는 성경 말씀처럼, 평화는 정의와 사랑을 실현하고자 연대하는 이들, 그분 마음에 드는 이들이 많아질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평화를 위해 당신의 몸으로 적대감을 부수신 것처럼, 우리도 남과 북을 가로막고 남쪽을 갈등으로 멍들게 하는 적대감을 허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주교는 책에 담긴 우리 민족의 아픈 이야기를 만날 신학생,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민족의 평화와 일치의 중요성을 간절히 깨닫기를 소망하고 있다.
사제로 24년, 주교로 24년 살아온 이 주교는 “집필을 마무리하고 돌아보니 75년 세월을 건강하게 지내게 해주시고, 사제 생활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느님께 정말 감사하다”며 웃었다.
한편, 이 주교의 신앙과 삶 그리고 민족화해 문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긴 수필집 「함께 울어주는 이」도 11월경 일본어로 번역돼 출간된다. 한국에서는 2018년 바오로딸에서 나온 책이다.
끝으로 이 주교는 남북을 둘러싼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기도하기를 당부했다.
“남북문제에 무관심해지거나 체념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은 더욱 희망을 버리면 안 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정은 계속돼야 해요. 우리 함께 인내하고 기도하며 평화를 향해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