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가 쓴 ‘슬픈 비’라는 시를 발견한 것이 영화를 만든 계기였어요. 엄마를 잃은 슬픈 마음을 비에 투영한 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읽혔죠.” 민 감독의 아내 안은미 작가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없어서 좋은 게 하나도 없다”며 매일 밤 펑펑 우는 아들에게 민 감독은 “‘슬픈 비’를 쓴 것처럼 엄마에게 편지를 쓰듯, 하느님께 기도를 하듯 시를 써보라”고 한다.
민 감독은 아들에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는 엄마의 ‘약속’을 전해주며 1년 뒤 엄마가 있는 곳에 다녀오자고 ‘약속’한다. 시우군은 일상을 시로 쓰면서 매일 밤 엄마에게 읽어주고 점차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인다. 영화는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쓴 꾸밈없고 순수한 러브레터 23편을 83분간 감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약속’은 민 감독이 만든 11번째 장편영화다. 민 감독은 “가장 오랜 시간 만들었고, 가장 힘들었던 영화였다”며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야 해 많이 고민됐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니 공감도 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에겐 슬픔을 온전히 통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죽음을 다룬 영화는 많은데 이별을 견뎌내고 애도하는 영화는 많지 않은 것도 작품을 만든 동기”라고 설명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도 감상포인트다. 영화는 지극히 힘든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절제를 보여주면서 자연조차 아름다운 시처럼 읽히게 한다. 민 감독은 “시우가 시를 쓰듯, 저도 아내에 대한 생각을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